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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ia: Epilepsy Commu > Volume 3(1); 2021 > Article
스페인 독감 이야기

Abstract

The so-called “Spanish” influenza virus seems to have to originate from Haskell County, Kansas. World War I gave rise to ideal conditions for a viral pandemic through overcrowded military camps around the world and the massive transfer of military personnel. Unlike other viral pandemics, the Spanish influenza selectively killed young people at an astonishing speed. The Spanish influenza had three waves, of which the second wave was most severe, causing several million deaths. It swamped many large cities around the world, as well as military camps. The influenza virus uses two proteins—hemagglutinin and neuraminidase—to invade cells and replicates through insertion of the viral genome into the invaded cell nuclei. An influenza pandemic generally develops when a radical change in these two proteins occurs through antigen drift. There were no effective treatments or preventive methods during the Spanish influenza pandemic. No authorities, including governments or cities, presented effective guidelines to prevent the spread of the virus, and they sometimes even misled the populace through absolute media control during World War I. The virulence of the virus finally abated by way of “returning to the mean.”

서론

현재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19 (coronavirus disease 2019, COVID-19)로 인하여 말 그대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다행히도 뇌전증 환자가 면역기능이 저하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고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더 취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코로나 판데믹은 전 세계인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꾸준한 약물 치료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항경련제를 복용해야 하는 뇌전증 환자는 병원 방문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인플루엔자 독감이 전 세계에 영향을 준 사례는 반복적으로 있어 왔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공포스러우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경우가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스페인 독감이 발생하고 만연하게 되었으며 판데믹으로 악화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COVID-19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본론

1. 악몽의 시작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사실 이 인플루엔자 독감은 역학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캔자스의 하스켈 카운티(Haskell County, Kansas)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1 이 지역은 매우 황량한 시골로, 얼마 되지 않는 수의 주민들이 돼지 등의 가금류 등과 밀접하게 접촉하며 사는 지역이다. 이 독감이 발생한 19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으로 전 세계가 대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일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이 독감은 한 지역에서 발생했다가 바로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대량의 군인 징발과 이동이 이 독감을 판데믹으로 만들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5천만에서 1억 명이 사망하는 사태를 만들었다. 전쟁 중에 중립을 선언한 스페인만이 보도 금지 없이 이러한 내용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억울하게도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헤스켈 지역의 최초 환자는 심한 두통과 몸살, 고열과 기침 등 전형적인 독감 증상을 보였으며 다른 독감과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 증상의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같은 지역에서 수십 명이 같은 증상을 보여 이 지역의 의사가 독감 증상을 학술지에 보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지역에서 모든 증상이 사라지고 환자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젊은이 몇 명이 이미 바이러스를 가진 채로 군 집합소에 입대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폭발적인 확장세를 보이게 된다. 나중에 다루겠으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주기를 갖고 여러 차례의 파도와 같이 확산이 되며 초기 공격 과정에서 인간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증식하기 위한 적응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2.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다.2 이는 RNA를 염색체로 갖는다는 뜻으로, DNA 바이러스와 달리 유전자로 단일 가닥을 갖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복제가 더 간단하고 또 불안정해서 많은 변이가 생기는 점이 특징이다. 바이러스가 세포 내로 침투하면 침투한 세포의 유전자에 자신의 유전자를 삽입해서 같은 바이러스를 수십만 개 복제하도록 지시한다. 이 과정에서 침투당한 세포는 파괴되고, 밖으로 나온 바이러스는 다시 다른 세포를 공격하게 된다. RNA 바이러스는 매우 변이가 심해서 한 개의 바이러스가 하나의 세포 안에서 100,000 내지 1,000,000개의 바이러스로 증식하지만, 이 중 단지 1,000개에서 10,000개만이 다른 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대부분의 복제된 바이러스는 변이로 인해 세포 공격 능력을 잃어버린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형, B형, C형이 있는데 B형도 질병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오로지 A형만이 유행병이 될 수 있다. 자연에서는 새들이 이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바이러스는 조류에서는 소화기 감염을 일으키는데, 따라서 새들의 배설물에는 다량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사람이 여기에 심하게 노출될 경우 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나 이 경우 감염된 사람은 죽게 된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적응하게 되면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사람 간의 감염이 가능해지며 유행병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사람에서는 호흡기계를 가장 강하게 침범하지만, 근육, 관절통, 두통과 고열을 흔히 동반하게 된다. 거대한 유행이 없는 상태에서도 미국에서만 매년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사망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한 세기에 최소 수 차례의 인플루엔자 판데믹이 발생한 바 있다.
바이러스는 유전 물질을 포함한 공 모양을 하고 있다. 표면에는 두 개의 다른 모양을 갖는 돌출물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침(spike) 모양이고 하나는 나무(tree) 모양이다(Fig. 1). 침 같이 생긴 돌출물은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인데 이것이 침투할 세포 표면에 있는 시알산(sialic acid)과 결합하는 과정이 최초의 침투 과정이다. 더 많은 헤마글루티닌이 시알산과 결합하게 되면 세포막에 구멍이 생기고, 이 구멍을 통해서 바이러스가 세포 속으로 들어가면서 세포 내에 소포(vesicle)를 형성하게 된다. 다시 헤마글루티닌이 세포 소포와 결합하면서 바이러스는 껍질을 벗고 이후에 바이러스 유전자가 세포핵으로 침투해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라는 신호를 보내면 바이러스의 복제가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의 다른 돌출물인 뉴라미니다제(neuraminidase)는 남아 있는 세포막의 시알산을 분해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있어야만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가 죽어가는 세포 내에 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세포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 과정으로 보면 바이러스는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엄청나게 효율이 좋은 기계임을 알 수 있다.
바이러스를 직접 죽일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면 이 바이러스로부터 인체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다.3 한 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회복이 되면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이 바이러스의 항원에 대항하는 방법이 고도화되면서 다시 감염이 되어도 쉽게 물리칠 수 있다. 백신도 이 바이러스의 항원을 사람들에게 주입하여 미리 면역 체계를 고도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도 인체 내의 이러한 면역 체계를 피해 가는 방법을 갖고 있다. 바로 바이러스의 항원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백신을 만들기 쉽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러한 유전자 변이 때문이다. 이중 바이러스의 세포 내 침투에 관여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제가 가장 변화가 빨리 일어나는 부분들이다. 이 두 부분의 현저한 차이에 따라 인플루엔자 유전자가 H1N1, H3N2, H5N1, H7N9 (스페인 독감은 H1N1) 등으로 불리게 된다. 이 두 부분의 변화가 인체 내 기존의 면역 체계의 공격을 피할 정도에 이르는 것을 항원 소변이(antigen drift)라고 하고, 이 부분의 변이가 아주 크게 나타나는 경우를 항원 대변이(antigen shift)라고 하며 바로 이런 정도의 변이가 일어나는 경우 판데믹을 일으킬 수 있다. 조류독감이 발생하는 경우 많은 조류들을 살처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러한 대변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항원 대변이는 여러 변이를 갖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세포 내에서 재조합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특징을 갖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기존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숫자에서 밀려나면서 사라지게 되고 오직 한 가지의 우세한 바이러스가 판데믹을 만든다. 이 경우에도 항원 소변이는 계속해서 일어난다.

3. 비극을 위한 완벽한 무대

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은 바이러스 판데믹이 창궐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참호전은 극심한 소모전으로 이미 수백만 명의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갔다.4 하지만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이 전쟁에 참여하기를 꺼렸고 재선을 위한 1916년의 슬로건도 ‘우리에게 전쟁은 없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1917년 1월에 독일은 통보 후 단 24시간의 여유를 두고 미국의 상선과 비 전투함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 독일은 이를 통하여 미국이 아예 전쟁에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고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공급을 끊어 전쟁을 끝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멕시코에 미국 공격에 대한 동맹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전쟁에 회의적이던 윌슨 대통령은 여론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고 결국 전쟁을 선언하게 된다. 막상 전쟁을 선언하고 나서는 정반대의 태도로 전쟁을 향한 굳은 결의를 보여주게 된다. 이를 통해서 초기에는 21세에서 30세까지, 곧이어 18세부터 45세의 남자들에게 징집 참여가 강제되고, 전국적으로 전쟁에 대한 반대나 회의론은 철저히 차단하는 강력한 언론 통제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바이러스의 창궐에 가장 적절한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하나는 군대에 입영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가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언론 통제로 국민들은 방역은 고사하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전혀 알 길이 없었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민간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군대로 징집되면서 민간의 의료진 공급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전의 전쟁 경험에서 항상 전염병이 문제가 된 것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당시에도 이런 위험성을 알고 지속적으로 경고를 한 전문가들은 있었다. 예를 들어 고가스(William C. Gorgas, 제22 대 미군 의무총감)도 인플루엔자 판데믹 이전에 이미 홍역이 군대에 유행하는 것을 보고 당시의 밀집 환경을 유지하는 경우 더 큰 재앙을 만들 수 있음을 공개 증언하였으나 오히려 이후에 군대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가 된다.5

4. 폐렴에 대한 당시의 의학적 이해

폐렴은 당시에 제1의 사망원인이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폐를 침범하면 신체 내의 면역 반응이 작동하고 이에 따라 염증 세포, 손상된 세포 조각들, 체액, 효소, 상흔 등이 보이면서 폐가 굳어지는 과정을 야기한다. 바이러스의 경우는 폐 세포들을 직접 공격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과정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더 흔하게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약해진 방어막을 뚫고 2차적으로 세균이 침범하여 심한 폐렴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에 항생제는 없었고 감염에서 회복된 환자의 혈청을 이용하여 세균에 대항할 수 있는 치료 혈청을 만드는 것이 유일하게 기대해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혈청에 존재하는 항체가 세균의 세포막과 결합하면 신체의 면역세포들이 이 세균을 죽이게 된다.
폐렴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세균은 폐렴구균(pneumococcus)으로,6 초기에 폐렴구군에 다양한 형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결국 가장 흔하게 사람에게서 폐렴을 일으키는 것은 폐렴구균 1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학자들은 이 폐렴구균에 대하여 효과적인 혈청과 백신을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5. 제1차 및 2차 유행과 계대(passage)

헤스켈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1918년 2월 말에서 3월 초에 펀스톤 군 캠프(Funston camp, Kansas)에 도착하고 이곳에 집결한 군인들이 전국 여러 곳의 캠프와 프랑스 등의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제1차 유행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이 해 봄에 36개의 군 캠프 중 24곳에서 인플루엔자 환자가 발생하며 곳에 따라 10%의 군인이 환자가 되기도 하였다(Fig. 2). 또한 미국 내 50개의 대도시 중 30곳에서, 캠프 근처의 민간인들에게서도 인플루엔자 환자가 나타났다.7 4월에는 최초로 프랑스군 캠프에서, 5월에는 영국 군대 내에서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때 영국에서는 30,0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 1차 유행의 특징은 병의 경과가 심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대부분 합병증 없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모두 다 양호한 경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고 급속히 진행하는 출혈성 폐렴이 예외적으로 보고되기는 했다. 그리고 켄터키에서는 사망 사례가 적지 않게 나왔는데, 특히 놀라운 점은 40%의 사망사례가 20세에서 25세 사이의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이다. 5월 후반에는 프랑스의 작은 캠프에서 1,018명의 군인 중 688명이 인플루엔자를 앓고 이 중 5%가 사망하는 충격적인(이들의 젊은 나이를 감안하면) 일도 벌어졌다. 7월에는 프랑스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200만에서 12만 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여 전쟁 수행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이 유행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라지고 8월 10일에 영국군은 인플루엔자의 종식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동안 미국은 대유행은 오지 않았고 또 인플루엔자가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약해진 것도 아니고 사라진 것도 아니었으며 더 끔찍한 형태로 나오기 위한 잠복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것이 치명적인 제2차 대유행이다(Fig. 3).
바이러스가 몇 차례의 유행을 겪으면서 더 심한 증상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가설이 있다.7 그 하나는 경미한 유행과 심한 유행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완전히 다른 종류일 경우인데 이 가능성은 확률상 매우 희박하다. 특히 첫 유행에 감염되었던 사람이 2차 유행에 어느 정도의 면역을 갖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이 가설은 설득력이 없다. 두 번째 가설은 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 내에서 재조합을 거쳐서 새로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생긴다는 것이다(이 이론은 새로운 판데믹을 일으키는 항원이 크게 다른 바이러스의 출현에 적합한 설명이다). 세 번째의 가장 유력한 가설은 계대(passage)에 의한 설명이다.8 계대라고 하는 것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숙주를 거치면서 점차 독성이 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1827년에 프랑스 과학자인 다바인(Casimir-Joseph Davaine)의 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었는데, 박테리아에 감염된 혈액을 토끼에 주입하여 감염 후 폐사시키는 과정에서 감염된 토끼를 거치는 횟수가 늘어나면 점차 적은 양의 혈액으로도 토끼가 죽는 것이 관찰되었다(25마리의 계대를 거치면 백만 분의 한 방울로도 토끼를 죽일 수 있다). 이것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숙주의 환경에 점차 적응하면서 더 효과적인 살인 기계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계대 과정이 끝도 없이 진행되지는 않는데, 너무 효과적으로 숙주를 빨리 죽이면 전파는 점차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도 한 때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이었지만 점차 그 치명도가 약해지는 과정을 보인 바 있다.
제2차 대유행은 1918년 가을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조짐은 7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7월 초 단 7일 동안에만 287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며 이 중 128명은 버밍햄(Brimingham) 지역의 거주자였다. 이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전 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물 밑에서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상태에서 계대를 통한 인체 적응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이러스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하여 전 세계에 계속 퍼져나갔으며 이를 민간에게 전파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6. 군 캠프와 필라델피아 이야기

당시 보스턴(Boston) 북쪽에 위치한 데븐(Deven) 캠프는 1917년에 개설되었고 초기에는 15,000명의 군인이 거주하였다. 전쟁의 영향으로 계속 밀려드는 인원을 수용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숙영지가 건설되고 있었다. 다른 많은 캠프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 이곳의 의료진은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8년 9월 초에는 이미 45,000명 이상의 군인이 집결하였고, 이러한 환경은 바이러스 전파의 이상적인 환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2018년 8월 셋째 주에 이르러서 급격하게 폐렴 환자들이 증가하게 되는데, 단 하루 동안에 1,500명이 넘는 군인들이 환자로 바뀌기도 하면서 9월 후반부에는 전 병영의 20%가 폐렴에 걸리게 되었다. 250명이 넘는 군의관들이 환자들을 치료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이 폐렴은 기존의 어떤 폐렴과도 다른 임상양상을 보였는데 그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증상의 심각도와 병의 진행 속도였다. 증상을 느끼고 불과 반나절 만에 청색증이 나타나면서 코와 입에서는 출혈이 섞인 액체가 흘러나오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바로 하루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으며 이 중에는 의사와 간호사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당시 부검을 실시한 의사는 이전에 어디에서도 관찰하지 못하던 특수한 소견을 관찰하였는데, 폐 전체가 출혈성 액체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일리노이(Illinois) 주의 록포드(Rockford)에 위치한 다른 군 캠프인 그랜트 캠프(Grant camp)는 열정적인 군인인 찰스 하가돈(Charles Hagadorn) 대령의 지휘하에 있었다.7,9 하지만 그는 폭발하는 수용인원의 증가로 인해, 캠프 내 과밀화를 막기 위하여 군인들 간 일정 간격을 유지하자는 의견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나름대로 길과 숙소를 청결하게 하고 가급적 여럿이 모이는 것을 자제하게 하였으며, 부대를 외부와 격리하려는 노력도 하였다. 하지만 이 부대는 40,000명 이상의 군인이 있었고 이러한 과밀화는 곧 예견된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 1918년 9월 21일 하룻밤 사이에 108명의 군인이 인플루엔자 증상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물론 군 병원은 이들을 부분적으로 격리하는 등 노력을 하였으나 문제는 무증상 전염으로, 아무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인플루엔자의 전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가돈 대령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권한을 사용하여 군 의무관들의 요청에 성실히 협조하였으나 감염자와 사망자는 계속 늘어났고, 10월 초에는 하루에만 1,000명이 넘는 군인이 새로이 인플루엔자에 감염이 되고 100명이 넘는 군인이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전체 사망자가 500명을 넘어서자 자신의 책상에 사망자 확인 서명을 위한 서류를 수북하게 쌓아둔 채로 하가돈 대령은 권총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최종적으로 캠프 그랜트에서는 4,000명이 넘는 감염자와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한편 당시 필라델피아(Philadelpjia)에서는 전쟁 특수로 인해서 수십만의 새로운 일군들이 선박 건조를 위해서 모여 있었다. 전체 인구는 175만 명이 넘었다.10 갑작스럽게 많은 인구가 몰려들었으나 주택 사정은 매우 열악해서 한 집에 수십 명이 거주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리고 사회 복지 제도는 매우 낙후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비단 필라델피아만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한 마디로 인플루엔자 창궐에 좋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 필라델피아는 부패한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에드윈 바레(Edwin Vare)의 지배 하에 있어서 정상적인 시정기능은 잘 작동하기 않고 온갖 탈 불법이 횡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필라델피아의 공중 보건 책임자는 정치적인 이유로 임명된 윌머 크루센(Wilmer Krusen) 박사로, 부패하지는 않았으나 공중 보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적극적으로 행정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었다.7,10
이런 상황에서 9월 7일 마침내 보스턴으로부터 300명의 선원을 실은 배가 필라델피아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4일 후 몇 명의 선원이 인플루엔자를 앓기 시작하였다. 이 배에 대해서는 격리가 선언되었으나 이때는 이미 인플루엔자가 배를 빠져나가(무증상 감염 경로 등을 통해) 항만 주위로 퍼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곧바로 9월 중순부터는 수백 명의 항만 노동자가 인플루엔자를 앓기 시작했고 이를 치료하던 의사, 간호사들도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보건 책임자인 크루센은 인플루엔자의 위험을 애써 무시하였을 뿐 아니라 비상 계획도 전혀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신문 매체를 이용해서 인플루엔자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보도하게 하였다. 선원들이 인플루엔자로 죽기 시작하면서 일부의 공중 보건 전문가들이 검역과 격리를 주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면서 보건 당국은 오히려 인플루엔자가 정점에 도달해서 앞으로 줄어들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다. 설상가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위한 기금 마련 행진이 9월 28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에 미국의 여러 도시들이 이러한 모임을 계획하였다가 일부는 인플루엔자로 인하여 취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크루센은 보건 전문가들의 취소 촉구에도 결국 행사 진행을 허가하였고 이로 인해 2마일에 달하는 거대한 행렬이 필라델피아 시가지를 행진하기에 이르렀다(Fig. 4). 당시 인플루엔자의 잠복기인 24시간에서 36시간이 경과하자 항만에서 관찰되던 인플루엔자 증상이 바로 민간인들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각 주나 시에 지침을 내려줄 연방정부의 노력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전쟁 수행에 방해가 되는 정보는 모두 차단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곧 필라델피아의 시내의 환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퍼레이드가 지난 지 3일 만에 단 하루 동안 117명의 환자가 인플루엔자로 사망하였다. 환자들을 위한 임시 거처가 500병상으로 만들어졌으나 하루 만에 다 찼다. 그리고 비슷한 규모의 시설 12개가 만들어졌으나 환자의 규모에는 턱없이 모자라서 곧 수십만 명의 시민이 환자로 변하고 하루 단위로 수백 명이 죽어 나가게 된다. 어제까지도 멀쩡한 이웃과 친구, 가족이 다음 날 보면 죽어있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크루센은 이러한 내용은 과장된 것이고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였다. 마치 2020년의 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보는 듯하다. 시내에 관이 모두 동이 나고 더 이상 무덤을 팔 사람도 없어서 시체를 대충 천에 말아서 쌓아두거나 집에 방치하는 일도 빈번하였다.11 당시 환자가 발생하면 집 문에 천을 거는 것이 권장되었는데, 마치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이러한 천이 보이는 것 같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점막의 출혈과 폐의 출혈성 염증으로 환자의 신체 구멍으로부터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죽어가는 상황은 모든 사람을 공포의 끝으로 몰고 갔다. 병원과 수용 시설에는 환자들이 바닥에 드러누운 채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환자들이 죽어 나가기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7. 스페인 독감의 증상과 병리소견

스페인 독감의 증상은 매우 다양해서 이전에 인플루엔자 감염의 증상으로 알려진 적이 없는 많은 증상들이 나타났다. 고열, 오한은 기본이고 두통, 극심한 귀통증도 흔히 나타났으며, COVID-19와 마찬가지로 몇 주간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현상도 있었다. 신경계 증상으로 두통 이외에도 의식 혼란, 인지 장애 등이 급성증상과 후유증으로 나타났고, 이 외에도 바이러스는 거의 모든 전신 기관을 침범하는 것처럼 보였다. 산소 포화도의 감소로 전신에 극심한 청색증이 나타나 마치 움직이는 시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폐에 극심한 염증으로 폐 일부분이 터져서 가슴 피부 밑에 공기주머니가 생기는 일도 다반사였는데 가장 공포스러운 현상은 역시 출혈이었다. 폐의 출혈성 부종과 점막의 광범위한 출혈성 병변으로 인해 코, 입, 귀, 심지어는 눈을 통해서도 피가 나왔다.7,12
이전과 그 이후로 유행한 대부분의 인플루엔자와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보통의 인플루엔자가 영·유아나 고령, 또는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감염이 되고 이때 사망 확률도 가장 높은데, 스페인 인플루엔자의 경우는 건강한 청‧장년을 공격하여 빠르게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점이다. 20대에서 40세 사이의 사망자는 경우에 따라 노인 사망자의 4배를 넘기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군대 내에서 사망한 환자의 숫자가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를 넘어선다. 사망에 이르는 속도도 매우 빠른데 아주 건강한 사람이 증상이 나오고 24시간이 경과하기 전에 사망하는 사례도 흔했다. 보통 인플루엔자로 사망하는 경우는 바이러스 자체의 극심한 침습으로 인해 폐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또는 바이러스의 침입 후 면역 방어 체계가 떨어진 상태에서 이차적으로 세균이 침범하여 세균성 폐렴으로 진행하는 경우다. 그러나 면역 기능도 아주 건강한 젊은 사람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빠른 시간 내에 사망하는 경우는 이것으로 설명이 잘 되지 않는데, 실질적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치게 강력한 면역반응 때문이었다. 즉 바이러스가 폐를 침범하면 이를 막기 위하여 면역 체계가 작동하는데, 지나치게 강력한 방어로 인해 바이러스뿐 아니라 주변 조직이 모두 파괴되었던 것이다.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환자의 폐에서는 바로 이러한 소견이 관찰되는데, 폐는 액체로 가득 차게 되고 이 액체에는 망가진 세포들, 면역 세포들, 면역 체계에 작동하는 효소들이 혈액과 더불어 마구 뒤섞여 있게 된다.13 폐 자체가 염증성 핏물이 꽉 찬 가방처럼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세월이 흐른 후에 규명이 되었고 최근에는 COVID-19 감염에서도 일부 관찰되었는데, 이를 ‘사이토카인 폭풍’이라고 부른다.14

8. 감염 예방과 치료를 위한 노력

비록 1세기 전부터 젠너(Edward Zenner, 1749–1823)나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가 백신을 개발하여 사용하였고15 1892년도에 이바노프스키(Demitiri Ivanovsky)가 박테리아가 통과하지 못하는 필터를 통과하면서 감염을 일으키는 존재를 확인하였으나,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원인이 바이러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16 당시에도 여러 과학자들이 스페인 인플루엔자의 원인을 밝히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환자와 사망자의 검체에서 대부분 발견된 그램 음성 혐기성 세균(Pfeiffer’s bacillus; Haemophius influenzae: 그래서 이 간균은 나중에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이 세균과 주요 2차 감염원인 폐렴구군에 대항할 수 있는 혈청 치료법을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고 일부에서 실험적으로 사망률을 줄이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스페인 독감의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었으므로 이 판데믹을 막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결국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으며 심지어 2차 세균성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도 없었으므로 사실상 치료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유일한 방법은 감염의 예방이지만 이미 말한 대로 이에 대한 국가적인 노력이나 지침은 전혀 없었고 각 도시별로 궁여지책으로 모임을 막고 개인 위생을 강조하며 침을 뱉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노력이 산발적으로 있었다. 당시에는 효과적인 마스크는 없었고 거즈를 4장 겹쳐서 마스크를 만드는 법이 알려졌으나(거즈는 구멍이 많아 효과적으로 비말을 차단하기는 힘들었다) (Fig. 5),그나마도 코는 제외하라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기도 하였다. 또 숨쉬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착용을 거부하거나 구멍을 내서 사용한 사람들도 많았다.17 오로지 질병의 참혹함만이 사람들이 알아서 격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9. 3차 유행과 스페인 독감의 퇴조

1919년 1월에 제3차 유행이 시작된다. 이때는 그동안 스페인 독감에 대하여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었던 호주가 검역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감염자를 낳았고(12,000명이 사망), 곧이어 유럽과 미국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3차 유행은 1919년 7월까지 지속되는데 스페인, 세르비아, 멕시코, 그리고 영국이 주로 영향을 받아 새로이 수십만 명이 사망하게 된다. 이때 미국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아 도시별로 산발적인 유행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래도 1919년 첫 6개월간 수십만 명이 추가로 사망하였다.
특징적인 것은 이 3차 유행에서 바이러스의 치명도가 크게 약화하였다는 것인데, 이 형상은 ‘평균으로의 회귀’로 설명이 된다.18 원래 확률적으로 극히 드문 심각한 현상이 나타나면 뒤따르는 현상들은 자연적으로 덜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며 1918년의 강력한 바이러스는 확률적으로 매우 드문 극심한 질환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뒤의 바이러스는 그보다는 덜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현상을 끊임없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성과 관련지어서 생각하면, 빠르고 지속적인 변이를 통해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결국 평상시 정도의 치명률을 보이는 쪽으로 점차 회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페인 독감의 퇴조는 결국 바이러스의 특징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전염력은 강하면서 치사율은 낮은 것이 유전자를 가장 널리 퍼트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이것이 현재의 코로나 유행에 합당한 상황이다. 미국 등지에서 유달리 사망이 많은 것은 결국 대통령을 포함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10. 종국

최종적으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5억 명 이상을 감염시켰고, 5천만 명 이상(보고마다 2천만에서 1억으로 추정치가 다르다)의 생명을 앗아갔다. 바이러스 판데믹으로는 역사상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가장 광범위하고 치명적이었다. 바이러스 자체의 강한 전염력 및 치사율과 당시의 1차 세계대전, 질병에 대한 무지, 그리고 이를 막을 수 있는 행정력의 부재 등이 모두 결합된 결과물이다. 특히 필라델피아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거듭된 방역 전문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퍼레이드를 허가하고 바이러스의 위험을 축소해서 지속적으로 시민들을 판데믹의 지옥으로 빠뜨린 경우들은 지탄을 피할 수 없겠다. 그리고 무려 100년이 지나서 엄청난 과학적, 의학적인 발전을 이룬 상황에서 맞이한 COVID-19 판데믹에 대한 각국의 대처를 보면(특히 미국의 트럼프의 태도를 보면) 도대체 과거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 의심이 든다. 그리고 COVID-19의 경우 전통적인 인플루엔자와 같이 고령자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므로 상대적으로 활동성이 높은 젊은 층은 격리지침을 잘 따르지 않아 더 큰 확산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독감은 이외에도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우선 독일군이 최후의 반격 작전으로 상당한 성공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공격이 중단되고(기록은 확실치 않으나 스페인 독감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휴전 협정 조인에 몰리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4 다른 한 가지 재미있는 가설은 윌슨 대통령도 스페인 독감에 걸렸었다는 것이다. 스페인 독감이든 아니든 윌슨 대통령이 유사한 질환을 앓았던 것은 확실하고, 그 이후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증언이 많다. 이후 쉽게 피로해지고 정확한 판단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서 가혹한 징벌을 부과한 것에 대하여, 윌슨이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결국 판단력 부재와 건강 문제로 이를 받아들였고 이것이 전후 독일의 극심한 경제난과 나치즘의 발로로 이어졌다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그 뒤로 이어지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에 스페인 독감도 상당 부분 기여를 한 셈이다.

11. 한반도에서의 스페인 독감

마지막으로 당시 한반도의 상황을 살펴보면, 1918년 당시에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한국에서는 이를 무오년 독감(戊午年 毒感) 또는 서반아 감기(西班牙 感氣)라고 불렀다. 1918년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 1,759만 명 가운데 약 16.3%인 288만 4천 명이 스페인 독감 환자가 되었고, 이 중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19 인구의 약 1.8%가 사망한 셈으로 한반도의 상황도 엄중했음이 틀림없다.

NOTES

Conflicts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uthor contributions

All work was done by Lee SK.

Acknowledgements

None.

Fig. 1.
Structure of the influenza virus. Hemagglutinin binds to sialic acid in the membrane of cells in the respiratory system. As more hemagglutinin molecules bind to the cell membrane, the virus itself adheres to the cell. The virus slips into the cell, forming vesicles, and finally extrudes from the vesicle. Neuraminidase breaks down the sialic acid of the remaining cell membrane of the invaded cell to prevent the virus from being caught in the destroyed c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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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Soldiers from Fort Riley, Kansas, ill with the Spanish influenza at a hospital ward at Camp Funston (Otis Historical Archives, 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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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Death rates of the three waves of Spanish influe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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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Philadelphia Liberty Loan Parade, 1918 (the Mutter Museum, College of Physicians of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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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Women working for the Red Cross making gauze masks during the influenza pandemic in 1918 (Bettmann Archive/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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