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7th century was the period of searching for the human soul. The most prominent philosopher at this period was Rene Descartes. He abandoned the old Greek philosophy and ushered the start of new thinking to find the truth. He also put cornerstone for the mathematical understanding of the world and the importance of the scientific experiment. He proposed the mind-body dualism to explain the mechanism of behavior of the living things. By Descartes, the two types of substances existing in the world were the physical and the mental ones. The only human soul could not be examined directly and had the power of self-determination and consciousness. Thomas Willis, the father of modern neurology, published the monumental book in the history of neuroscience, ‘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우선 세상 대부분의 자연 현상은 단순히 기계적이고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실험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부정하였다. 실험을 통해 무게가 다른 물건들이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현상도 확인하였다. 그러나 교회로부터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무리라고 비난을 받은 갈릴레오의 처지를 듣고 이 관찰의 발표를 보류하였다. 결국 이 통찰력 있는 주장은 데카르트 사후 14년이 지나서야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데카르트의 공식적인 첫 저서는 ‘방법에 대한 담론(
데카르트를 훌륭한 과학자로 생각하게 되는 다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수학에 대한 그의 믿음이다. 데카르트는 수학이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사물의 진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는 해석기하학이라는 방법을 개발하여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였고 이는 뉴턴과 라이프니치의 미적분학의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적인 세계는 수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점에서 그가 현대 과학의 시작을 알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과학자인 데카르트도 신을 부정한 것은 아니며, 수학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면서 기계적인 작동기전을 갖는 세계를 창조한 것은 여전히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의 사상은 무신론과 상당히 근접한다는 판단을 받아 1660년에는 가톨릭교회로부터 그의 저서들이 금서로 판정받기에 이르렀다.
데카르트는 그러나 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물질세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가 존재하며, 그것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이라 생각하였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영혼만이 영원불멸이고, 육체 없이도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며, 영혼은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계속 존재한다고 믿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라면 영혼과 육체의 교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데카르트는 이 작용을 하는 기관으로 뇌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송과체(pineal gland)을 지적하였다(
데카르트의 주장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데카르트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현명한 엘리자베스 공주(Princess of Palatine, Bohemia)는 편지에서 이러한 이원론에 대하여 ‘우리의 경험과 생각이 우리의 몸과 긴밀하게 엮여 있음’을 강조하며 ‘마음-신체 이원론(mind-body dualism)’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 외에도 덴마크의 신학자인 니콜라스 스테노는 대부분 동물의 송과체가 인간에 비하여 크다는 점을 들어 인간 영혼의 교류를 담당하는 송과체의 역할에 의문을 표시하였다. 그래도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오랫동안 서양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1950년대 초반에 일련의 과학자들이 마음과 뇌가 하나임을 주장하는 ‘동일성 이론(identity theory)’을 주장할 때까지도 살아남았다. 데카르트의 오류는 인간의 영혼과 마음이 뇌라는 물질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있다. 가장 적절한 생존을 위해서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오면서, 몸은 뇌에 신호를 보내고 뇌는 이에 맞는 지시를 몸에 내리며, 다시 몸이 이에 반응하여 교정된 신호를 뇌에 보내는 식으로, 뇌(마음)의 형성에 있어서 몸은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해왔다. 인간의 사고와 마음은 몸이 이렇게 주위 환경과 소통하면서 진화한 결과물이고, 만일 몸과 마음의 이러한 상호 교류가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정신은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1649년에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개인 교사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스톡홀름에 머물게 된다. 불행히도 스웨덴의 혹독한 날씨와 아침 5시부터 시작되는 개인 교습으로 인해 1650년에 폐렴에 걸려 이른 죽음을 맞게 되었다(수면은 면역 기능에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데카르트의 위대성은 마음과 몸을 분리한 이원론에 있는 것이 아니고(물론 이것도 뛰어난 성찰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물질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적인 세계는 수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점과 단지 특수화된 화학적 입자가 자동화된 반응과 행동을 만들 수 있는 ‘동물 영혼(animal spirit)’의 작동 기전을 생각해 냈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가 몸과 마음의 이원론을 주장하며 형이상학적 영혼의 존재를 주장한 데 반하여 토마스 윌리스(
그는 인간의 기억, 의지, 상상력 등 인간의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대뇌 반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뇌량(corpus callosum)은 감각과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뇌량이 양쪽 대뇌의 중앙 아랫부분에 위치할 뿐 아니라 뇌의 기능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길로 생각되는 연수(medulla, 윌리스는 연수의 이러한 기능을 왕의 고속도로, 즉 king’s highway라고 불렀다) 위쪽에 자리 잡은 점에 주목한 결과였다. 그리고 대뇌 반구는 중요한 고위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보다 기본적인 생체 기능은 소뇌(cerebellum)에 위치한다고 생각하였다. 윌리스의 소뇌는 단순히 현재의 소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보다 광범위하게 교뇌와 중뇌를 포함하는 것으로 상당히 올바른 관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그의 생각이 널리 퍼지거나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못하였으나 해부학과 임상에 기초한 이론, 즉 뇌가 부분적으로 기능을 달리할 것이며 인간의 생각이 대뇌에 위치한다는 주장은 매우 통찰력이 있는 동시에 역사적으로 뇌과학을 한 단계 더 전진시킨 생각임은 분명하다.
뇌 기능 부분을 제외하고 ‘
덴마크에서 태어난 스테노(
스테노는 뇌실에 뇌의 기능이 있다는 오래된 믿음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을 가하였다. 그는 신경계의 성장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뇌가 혼란 없이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려면 뇌 부분들이 유기적인 구조로 조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고명한 임상의사였던 윌리스에 비하여 스테노는 오로지 연구와 연구방법론에 매진한 인물이다. 윌리스가 주장했던 뇌량 중심설을 스테노는 미심쩍게 보았으며 선천성 뇌수두증 환자에서 뇌량이 없음에도 중요한 뇌 기능에 거의 문제가 없는 점을 들어 이를 반박하였다. 또 당시 학계의 풍조였던(정확한 확인 없이) 다른 책의 틀린 해부 그림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에도 일침을 가하였고, 윌리스의 책에 있는 이러한 오류를 지적하였다. 그래도 윌리스는 이러한 스테노의 지적을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스테노의 우수성을 칭찬하기까지 하였다. 스테노는 데카르트의 사상 중에 관찰 없이 사유에 의해서만 내린 결론들에 대해서는 더 혹독한 비판을 가하였다. 예를 들어 송과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송과체는 움직임이 없으며 신경 말단이 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지 않고, 동맥이 아닌 정맥이 주로 위치함을 들어 송과체의 역할을 부정하였다. 반면에 데카르트의 자동적, 기계적 뇌 작용 이론은 향후 뇌 기능을 설명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내다보았다.
이 시기에 비단 뇌과학 뿐 아니라 모든 의학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기계가 발명되었는데 이 것이 바로 현미경이다.
놀랍게도 뇌의 기능과 관련되어 누구보다도 선견지명을 보여준 학자가 따로 있었다. 스베덴보리는 윌리스와 마찬가지로 대뇌의 중요성을 예측하여 대뇌가 인간의 이해, 생각, 판단, 의지의 기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 결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뇌의 여러 기능들은 서로 다른 뇌 영역에 분포할 것이며 이렇게 해야만 혼돈 없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여 미래의 뇌기능 국소화의 발전을 내다보았다.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ll work was done by Lee SK.
None.
Portrait of Rene Descartes by Frans Hals, 1649 (Le musée du Louvre, Paris, France).
Descartes’ scheme of mind showing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 and animal spirit and the role of pineal gland.
Location of pineal gland.
Portrait of Thomas Wills by David Loggan. Line engraving, published 1674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United Kingdom).
(A) Circle of Willis. (B) The blood flow from the bilateral internal carotid artery to the circle of Willis. (C) The role of the circle of Wills when one internal carotid artery is blocked.
This bronze monument of Niels Stensen (
Display of the brain in Discours sur l’anatomie du cerveau (1669) on sagittal and coronal s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