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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ia: Epilepsy Commu > Volume 2(1); 2020 > Article
그칠 수 없는 아빠의 세레나데
진료실로 들어온 의사가 흥분한 듯 격하게 말했다. “틀림없이 암입니다. 백혈병 아니면 림프종 같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니 지금 당장 서울로 올라가세요!”
2002년 7월, 휴가 차 내려간 제주도에서 세 살 아이가 쓰러졌다. 쉴 새 없이 토하고 몸은 핫팩처럼 뜨거웠다. 비자림 숲속에서 정신을 잃은 아이를 차에 태우고 달려간 제주 시내 어느 소아과에서 나와 아내는 그렇게 천만 볼트의 번개를 머리에 맞았다. 차마 상상도 못 했고 대비할 수도 없었던 무서운 전쟁의 서막이었다.
이튿날 달려간 서울 모 병원 중환자실에서부터 내 아이 선우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항암치료가 진행되자마자 아이의 머리는 순식간에 민둥산이 되었고, 항암제를 맞으며 구역질에 몸부림치던 세 살 아들의 핏기 없는 살결은 언제나 나와 아내의 눈물에 젖어 있었다.
항암치료 한 달이 갓 지났을 무렵 어느 날 고즈넉한 오후, 어린이병동 복도에서 난데없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한 중년 남성이 병동 복도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미묘하게 어긋나는 음정과 박자로 보아 전문가는 아닌 듯했다. 그런데 축 늘어진 아이를 품에 안고 병실 벽에 기대어 그 선율을 듣던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흐르던 눈물은 어느새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나는 결국 아이를 침상에 내려놓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성악을 전공했기에 무감하리만큼 익숙한 것이 음악이었지만, 그 바이올린 선율은 죽음에 맞선 어린 아들과 그 아비의 아픈 영혼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햇살과도 같았다. 가슴이 저며 왔다. 저 아마추어 음악가도 아픈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데, 프로를 자부했던 나는 이제껏 그 누구의 무너진 가슴을 노래로 보듬어준 적이 있었던가! 결국 병실 바닥에 엎어져 눈물을 쏟기 시작한 나는 기도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아픈 영혼에 음악이 이토록 큰 위안이 되는 것이거늘 나는 이제껏 크고 화려한 무대만 바라보았군요! 내 노래가 있어야 할 자리를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 선우를 살려주십시오! 이 아이를 살려주시면, 저도 아픈 아이들을 위해 노래 부르겠습니다!” 2002년 여름, 나의 맹렬한 후회와 맹세의 눈물은 땀과 뒤섞여서 오래도록 병상 위를 흐르고 흘렀다.
선우는 3년여의 치료과정을 마치고 기적처럼 백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치료 종료 1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선우의 방사선 치료 중 뇌 손상이라는 예상치 못한 후유증이 남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똘똘하고 착하고 굳센 내 아들 선우가 도움 없인 살아갈 수 없는 두 살 지능의 지적 장애를 안게 되었다는 진단을 새로 받았을 때 나는 영혼이 찢기는 아픔으로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다가 아니었다. 다시 1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실로 가공할 골리앗과 또 맞닥뜨리고 만다. 선우에게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이라는 난치성 뇌전증이 찾아온 것이다. 소발작으로 시작된 증상은 달과 해를 거듭하며 빠르게 악화돼 갑자기 온몸을 뒤틀며 쓰러지는 대발작까지 발전되며 선우의 뇌를 온전히 점령해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는 발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선우의 몸은 수없이 깨지고 찢어졌다.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고 예리한 모서리에 찢기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선우를 보면서 나는 또다시 절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듯 잔혹한 현실을 방관하는 신과 세상에 대한 나의 참을 수 없는 분노도 점점 그 농도와 빈도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와 계단 위에 서 있던 선우에게 또 발작이 나타났다. 앞으로 쓰러져 얼굴부터 계단 아래로 떨어진 선우는 앞니가 부러지고 코와 입술이 찢어졌다. 찢어진 부위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선우는 눈이 뒤집어진 채 온몸을 뒤트느라 그 엄청난 고통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맨발로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간 나는 피범벅이 된 선우를 끌어안고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미친 듯이 울부짖던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어떤 음향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옛날 병동 복도를 채우고 나를 울렸던 그 바이올린 선율, 그리고 엎드려 울며 기도하던 나의 맹세… 그것이었다. “선우를 살려주시면, 저도 아픈 아이들을 위해 노래하는 위로자로 살겠습니다...”
결국 며칠 후인 2012년 1월,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복도 한끝에 서서 나는 혼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라보는 관객도, 보내주는 박수도 없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준비해 간 다섯 곡의 노래를 꿋꿋이 부른 후 병동을 나가던 나는 갑자기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병실 안에서 내 노래를 들으며 울고 있는 환아 어머니들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성악을 공부한 이후 크고 작은 무대와 다양한 곳에서 노래를 불러왔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내 노래를 듣고 저렇듯 눈물 흘리는 관객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노래하던 병동에 서너 달 뒤부터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4월부터 매주 한두 명씩 찾아와 노래에 동참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6월 중순이 되자 12명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2012년 6월, 아이 이름을 딴 ‘선우합창단’이 기적처럼 태어나게 되었다. 매월 어린이병원에서 정기적인 병동공연으로 환아들과 그 가족을 위로하던 선우합창단은 그 해 조선일보와 KBS, 평화방송 라디오 등 여러 매체에 보도되며 알려졌고, 다음 해엔 세브란스병원 발전기금 사무국이 주최한 2013 사랑나눔 콘서트에 출연해 탤런트 최수종, 하희라 부부와 함께 콘서트의 첫 스테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후 계속 발전을 거듭하던 선우합창단은 2017년과 2019년, 다른 합창단들을 규합해 <중증 뇌전증 환우돕기 착한 합창제>를 두 번이나 개최하기에 이르렀고 ‘착한공연 협동조합’을 설립, 환우와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도 선우가 가야 할 여정은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높다. 스물한 살로 성장한 신체와는 반대로 선우의 인지는 더욱 퇴보하여 이제 두 살에도 못 미친다. 뇌수술을 비롯해 갖은 치료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하루에 네댓 번 이상은 꾸준히 발작을 일으킨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아무 곳에나 대소변을 싸고, 찢어진 머리를 봉합한 상처는 풀기 바쁘게 또 찢어진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 가는 길의 혹독한 가시들로 인해 선우의 몸은 상할지라도 선우의 굳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은 조금도 상하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쓰리고 시린 그 삶이 낳은 기적의 가치는 결코 흐려지지 않을 것임을.
선우의 고통이 나를 노래하게 했고 그 노래는 결국 합창이 되었다. 그 합창은 다시 수많은 선우들을 위로하는 착한 공연으로 커져서 세상을 채울 것이다. 기적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고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노래 부른다. 때로는 고즈넉한 병동 복도에서, 때로는 쓸쓸한 골목 어귀에서, 나는 노래한다. 그칠 수 없는 노래, 세상의 모든 선우를 위한 세레나데를!
아픈 만큼 성숙해지니
아픈 게 나쁜 건 아니더라.
불편과 아픔은 우리를 깨어있게 하는 유익한 것.
그 어떤 아픔이든 그로 인해 무르익고 곰삭으면
붙잡아도 막아서도 언젠간 지나간다는데
당장 죽는다던 어린 내 새끼 아직도 살아서 곁에 있지만
죽음 못잖은 처참한 삶으로 날마다 아비의 가슴을 허문다.
하루에도 십여 번 육신에 지진을 일으키는
자식놈 뇌 속 방사선에 아비마저 피폭되어
백수광부마냥 노래하다 울부짖고 기도하다 쓰러진다.
눈 뒤집혀 떨고 있는 순둥이 아기 곰을 끌어안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사력 다해 속삭이면
아빠 품속 잠시 멈춰진 꿈결 같은 그 순간
평화롭게 안식하는 곱디고운 내 분신
신음을 토하는 너의 마른 입
허공을 휘젓는 너의 굳은 손
맘 놓고 안아볼 수 있는 그때가
이 아비에게도 안식과 구원의 시간임을.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너를 위한 일이라면서 너를 소홀히 하는 아빠를.
쓰러져 발버둥 치는 피범벅 네 얼굴을 애써 외면하고 나가서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 앞에서 환한 미소로 노래하는 아빠를.
영원한 삶은 천국에 있다고 이 세상 삶은 소풍과 같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땅 한 평, 집 한 채 더 가지려 목매는 어떤 사람들 눈엔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이 미친 짓을 아빠는 멈출 수 없구나, 선우야.
어쩌면 이 미친 짓이
이 처절한 우기에 우산이 되어 준다면
이 참혹한 홍수에 방주가 되어 준다면…
뒤집힌 네 눈에서 삐져나온 눈물 두 방울
아빠 눈물과 섞여서 네 뺨 위에 흐른다.

NOTES

Conflicts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uthor contributions

All work was done by Lee JJ.

Acknowledg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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