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지난 2020년 6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24,023,083대이다.
1 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 꼴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술의 발달과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자동차 등록 대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운전면허증은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면허증의 하나가 되었다.
뇌전증은 비유발적 발작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임상 증후군이다. 현재 임상에서 널리 쓰이는 뇌전증의 임상적 정의는
Table 1과 같으며,
2 이에 해당되는 환자는 항경련제 등의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
3 뇌전증 치료제의 꾸준한 발달과 치료 성적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뇌전증은 의식 장애를 동반한 징후나 증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뇌전증 환자의 운전을 제한하려고 시도했고, 환자들은 스스로 운전을 포기해왔다.
저자들은 뇌전증과 운전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에 대하여 편견을 해소하고 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에 대한뇌전증학회의 지침과 우리나라의 법령, 그리고 저자들의 경험 등을 토대로 뇌전증 환자의 운전에 대해 환자의 입장에서 자세히 짚어보고자 한다.
용어의 정의
뇌전증의 구체적인 정의는 ‘뇌전증 발작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학적 질환’이며,
2 여기서 뇌전증 발작은 ‘뇌의 비정상적으로 동기화된 신경 활동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징후나 증상’을 말한다.
4 운전의 사전적 의미는 ‘기계나 자동차 따위를 움직여 부림’이며,
5 도로교통법 제1장 제2조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도로에서 차마 또는 노면전차를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조종을 포함한다)”이 그 법률적 정의이다.
6 면허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인에게는 허가되지 않는 특수한 행위를 특정한 사람에게만 허가하는 행정 처분’으로,
5 이를 취득하지 않은 자가 행위할 경우 처벌의 대상이 된다.
도로교통법
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로,
6 이에 따르면 운전은 지방경찰청장으로부터 운전면허를 받은 사람에게만 허용하고 있다. 이 법률 82조에 운전면허의 결격 사유가 명시되어 있는데,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정신질환자 또는 뇌전증 환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42조에 의하면
7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란 치매, 정신분열병, 분열형 정동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재발성 우울장애 등의 정신질환 또는 정신발육 지연, 뇌전증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해당 분야 전문의가 인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조항만 본다면 운전면허의 결격 사유 여부를 의사가 판단하게 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의사가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를 제한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데, 실제로는 뇌전증 환자가 운전면허를 교부받기 위해서는 뇌전증과 관련된 증명이 필요하므로 의사는 뇌전증 환자를 도와주는 역할이라 하겠다. 즉, 의사는 뇌전증 환자 스스로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의무기록과 의사의 소견서 등을 제공한다.
뇌전증 환자의 인지와 확인
운전면허를 발급받고자 하는 사람이 뇌전증을 앓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 번째는 환자 스스로 운전면허 획득 시에 뇌전증 환자임을 밝히는 것으로, 주로 처음 운전면허를 획득하고자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뇌전증에 관한 개인정보를 인지한 기관의 장이 경찰청장에게 통보하여 수시 적성검사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관의 장은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58조에 의거하여 병무청장, 보건복지부 장관,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육ㆍ해ㆍ공군 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이며, 이들은 매 분기 1회 이상 경찰청장에게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7 예컨대, 이미 운전면허증을 보유한 사람이 병원에서 뇌전증을 진단받는다면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새로 발생한 뇌전증 환자를 인지하게 된다.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이 사실을 경찰청에 통보함으로써 이미 운전면허증을 보유하고 있는 뇌전증 환자가 수시 적성검사를 받게 하여 운전면허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대한뇌전증학회의 뇌전증 환자 운전 지침
대한뇌전증학회에서 제공하는 뇌전증 환자의 운전 가능성에 대한 지침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8: 1) 의식 장애를 동반하는 뇌전증 환자의 경우에는 최소 1년간 뇌전증 발작이 없어야 한다. 단, 의식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 가벼운 증상(뇌전증 발작이 일어나도 의식을 잃지 않고 사지의 움직임에 제한이 없는 경우)의 뇌전증 발작만 있을 경우 운전이 가능하다. 2) 수면 중에만 증상이 발생할 경우에는 운전을 할 수 있지만, 최소 1년 동안 깨어있는 상태에서 증상이 없었던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3) 새로 진단된 뇌전증 환자와 항경련제의 용량이나 종류를 변경한 환자는 마지막 증상으로부터 1년 이상 증상이 없어야 운전을 할 수 있다. 담당 의사는 이와 같은 지침을 참조하여 뇌전증 환자에게 운전 가능성에 대한 소견서를 발급하며, 이를 바탕으로 도로교통공단에서 운전면허 적격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대한뇌전증학회의 지침에서는 또한, 버스나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운전하는 경우에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운전면허의 취득과 지속에 대한 절차
도로교통법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교통 안전에 관한 교육, 홍보, 연구, 기술 개발과 운전면허 시험의 관리는 도로교통공단에서 시행한다.
6 즉, 도로교통공단에서 운전면허 발급 대상자 또는 이미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으나 수시 적성검사 대상자가 된 사람에 대해서 운전 적격 여부를 판정하여 운전면허 발급을 결정한다. 도로교통공단에서는 이 결정을 위해서 도로교통공단 직원, 외부의 교통 전문가, 그리고 의사(자문의) 등으로 구성된 ‘운전적성 판정위원회’를 운영하는데, 각 면허 시험장에서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뇌전증 환자에 대한 진료 소견서와 뇌파 검사 결과지를 요구하며, 필요 시 진료 기록을 참조할 수도 있다. 만약 운전면허 발급 대상자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직접 운전적성 판정위원회에 출석하여 의사 표현을 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운전적성 판정위원회는 매달 열리며, 위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타 기관의 장(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나 경찰청장 등)이 뇌전증 환자를 도로교통공단으로 통보한다면 수시 적성검사를 시행하여 적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간혹, 뇌전증 환자의 개인 사정에 따라서 즉시 검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본인이 신청하여 수시 적성검사를 유예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유예를 신청하면 결정은 수시 판정위원회에서 한다. 만약 유예가 결정된다면 1년의 기간을 유예해 줄 수 있는데, 두 번(2년)까지 유예할 수 있고, 세 번째에는 운전면허가 취소된다.
종합하면,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에 필요한 것은 법률에서 명시한 바에 따른다. 담당 의사의 소견서가 필수적이며, 이것은 의무기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뇌전증 환자와 담당 의사의 성실한 진료를 바탕으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겠다(
Fig. 1).
처벌
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에서는 위반 시의 처벌에 대해서 명시하고 있다. 그 중, 도로교통법 제154조 제3항에서는 “제45조를 위반하여 자동차 등 또는 노면전차를 운전한 사람은 3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한다”고 명시하였다.
6 여기서 도로교통법 제45조는 과로, 질병 또는 약물의 영향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의 자동차의 운전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한편, 도로교통법 제152조 제3항에서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으로 운전면허를 받거나 운전면허증 또는 운전면허증을 갈음하는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에 대해 처벌을 명시하였다.
6 따라서 뇌전증 환자가 운전면허 적성검사에서 질병 및 신체에 관한 신고서를 작성할 때 뇌전증이 없다고 허위로 작성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게다가, 도로교통법 제93조 제1항 제8호에서 명시한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운전면허를 받거나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으로 운전면허를 받은 경우”에 해당한다.
6 이에 대한 벌칙은 운전면허의 취소이다.
현행 법률은 뇌전증이라는 질병만으로 운전을 금지하지 않는다. 단지 운전에 문제가 없는 상태인지 판별하는 과정을 둘 뿐이다. 따라서 뇌전증 환자 스스로가 운전을 하는 데 위험이 없는지에 대해 확인을 하지 않았다면 관련 법에 의한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뇌전증이 있을지라도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약물의 순응도가 좋은 가운데 최근 수년 동안 발작이 없고, 운전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소견서가 있다면,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갑작스러운 발작으로부터 뇌전증 환자를 법률적으로 보호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행 법률에서는 자가용 운전과 업무용 운전에 대한 기준의 차이가 없다. 이에 대해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는 사업장 근로자의 뇌전증 관리지침에서 뇌전증 환자에게 제한될 수 있는 고위험 작업을 분류하여 제안하였다.
9 여기서 고위험 작업이란 1) 보호장치 없는 고공작업, 2) 동력기계 운전, 3) 안전장치가 없는 기계 주변의 작업, 4) 불이나 물 주변의 작업, 5) 고립된 상황의 장시간 작업, 6) 택시, 버스, 대형차량, 기차 운전 및 크레인 조작, 7) 항공기나 헬기 등의 비행장비 조종이다. 이러한 고위험 작업의 업무적합성에서는 최근 10년 동안 항경련제 복용 없이 뇌전증 발작이 없을 경우에 적합하다고 제안하였으며, 만약 뇌전증 발작이 수면 중에만 발생하고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없을 경우에는 최근 5년 동안 항경련제 복용 없이도 뇌전증 발작이 없으면 적합하다고 제안하였다.
결론
뇌전증 환자의 운전에서 담당 의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뇌전증 환자의 운전 가능 여부에서 1년 이상 증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의무기록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뇌파 검사의 진단적 수율이 낮은 점, 뇌전증의 진단이 병력에 기반하는 임상적 진단인 점, 그리고 뇌전증 환자 본인이 스스로의 뇌전증 발작을 모두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은 뇌전증 환자의 운전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데 의사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유가 된다. 한편, 본고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법률들의 목적은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질병을 알리지 않거나 관리하지 않고 운전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뇌전증 환자의 운전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 검사나 지표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하지만 꾸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한 의무기록이 중요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뇌전증 환자의 거의 모든 사회적 상황이 그러하듯이, 진료를 성실하게 받지 않거나 병력을 감추는 행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운전은 면허와 관련되어 많은 규정과 벌칙이 있으므로, 안전한 운전을 위해서는 뇌전증 환자와 의료진의 상호 이해를 통한 꾸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한 진료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