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뇌전증의 발병 원인 중에 유전자의 이상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원인 유전자를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해졌고,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새롭게 밝혀진 뇌전증 원인 유전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 번에 여러 개의 유전자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분석할 수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ext-generation sequencing technique)이라는 기술의 도입이 이러한 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약 10년 전만 하더라도 20여 개의 유전자가 뇌전증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졌으나, 차세대 염기서열분석을 이용한 유전자 발견의 가속화로 인해 현재까지 뇌전증과 연관되었다고 알려진 유전자는 1,000가지가 넘는다.1-5 이 기술은 새로운 유전자의 발견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환자에서 여러 유전자 이상을 동시에 확인하는 진단 기법으로 임상에서 적용되고 있는데, 진단기법으로 적용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유전자 패널 검사이다. 유전자 패널 검사는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의 몇 가지 선별된 유전자를 대상으로 그 유전자 중에 이상 소견이 있는지 한 번에 확인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유전체 전체를 분석하는 전장유전체분석(whole-genome sequencing, WGS)이나 전장엑솜분석(whole-exome sequencing, WES)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뇌전증의 유전적 원인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선별된 몇 가지 유전자를 검사하는 유전자 패널도 임상에서 그 유용성이 입증되었으며 실제 임상 진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유전자 패널 검사의 효용성과 검사의 제한점, 검사 대상, 검사 결과 해석의 주의점, 그리고 보험 제도 및 소요시간에 대해 순서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뇌전증 유전자 패널의 효용성 및 제한점
유전자 패널 검사를 통해 진단이 되는 경우는 어느 정도일까?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하였는지에 따라 연구마다 차이가 있으나 13%–49% 정도의 진단율이 보고되고 있다.6-11 뇌전증 뇌병증(epileptic encephalopathy) 환자 및 가족성 뇌전증 환자 216명을 대상으로 46개의 뇌전증 유전자에 대한 유전자 패널을 검사한 결과, 23%의 환자에서 원인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었다. 신생아 시기에 발병한 환자 중에서는 57%, 뇌전증 뇌병증 환자 중에서는 32%, 전신 및 국소 뇌전증 환자 중에서는 각각 17%, 16%의 환자에서 원인 유전자 변이가 확인된 것으로 보고되었다.12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12개월 미만의 연령에서 경련이 발병한 11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79–127개의 뇌전증 유전자에 대한 유전자 패널을 시행하였을 때 거의 절반인 57명(47.3%)에서 원인으로 생각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11 성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뇌전증 유전자 패널 연구에서는 전체 2,008명의 환자 중 10.9%에서 진단이 가능하였고, 이 중 0에서 1세까지의 영아기에 뇌전증이 발병한 경우가 29.6%로 가장 높은 진단율을 보였으며, 발병 나이가 증가할수록 원인 유전자의 진단율은 감소하여 성인기의 경우에는 3.7%에서 유전적 진단이 가능하였다. 또한 발병 나이와 상관없이 인지 장애나 발달 지연을 동반한 경우에는 16%의 유전적 진단율을 보였다.13 환자 그룹에 따라 유전자 패널을 통한 진단율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환자의 특성이 유전적 원인으로 인한 뇌전증의 발병과 관련이 있는지를 시사한다.
그렇다면 유전자 검사를 해서 원인 유전자가 확인되었을 때 환자들은 어떠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활발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유전자 이상으로 질병이 발생하였을 때 그 유전자를 직접적으로 교정하는 방법은 아직 임상에서 적용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원인 유전자를 찾더라도 그 유전자를 고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전자 검사를 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진단을 정확히 하여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그 예후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PRRT2 유전자 관련 뇌전증은 대표적인 자연호전 가족성 영아뇌전증(self-limited familial infantile epilepsy)으로, 대개 1년 이내 경련이 호전되며 청소년기와 성인기에는 이상 운동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어 추후 경과를 예측하는 데 유전자 정보가 도움이 될 수 있다.14 둘째는 적절한 항경련제 선택이나 질환에 특징적인 치료를 선택하는 등 치료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이다. 치료의 측면에서는 유전자에 따라 경련에 더 효과적이거나 오히려 경련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항경련제가 알려져 있기 때문에 원인 유전자의 확인은 치료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SCN1A 유전자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뇌전증 증후군인 드라베 증후군의 경우, 나트륨 채널 억제 기전을 갖는 페니토인(phenytoin)이나 라모트리진(lamotrigine)과 같은 항경련제가 사용되면 경련이 악화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항경련제의 사용을 피할 것이 권고된다.15 또한 대사 이상에 의한 뇌전증의 경우 특정 식이 요법이나 결핍 물질의 보충이 도움이 되므로 항경련제 이외의 다른 치료법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SLC2A1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포도당 수송체 1형 결핍 증후군 환자의 뇌전증에는 식이요법인 케톤 식이가 효과적임이 알려져 있고, ALDH7A1 유전자 관련 뇌전증은 비타민 B6인 피리독신(pyridoxine)을 보충하면 경련이 호전될 수 있다.16,17 또한 특정 유전적 이상으로 인해 뇌전증 이외에 동반될 수 있다고 알려진 문제들을 미리 확인하여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KCNH2 관련 뇌전증의 경우에는 QT 간격 연장 증후군(치명적인 부정맥과 관련된 급사를 일으키는 질병)이 보고되었기 때문에 이 유전자 이상이 확인되었을 경우 심장 분과의 진료가 권장된다.18 이처럼 원인 유전자가 확인될 경우, 모든 유전자에서 적용되지는 않으나, 일부 특정 유전자 관련 뇌전증의 경우 각 유전자에 맞는 맞춤 치료가 가능할 수 있으며 치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19,20
그렇다면 유전자 패널 검사의 제한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제한점은 미리 정해진 수의 유전자만을 대상으로 검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패널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유전자에 대해서는 검사를 할 수 없으며, 유전자 패널마다 검사할 수 있는 유전자의 수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검사를 시행하는지에 따라 진단율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유전자가 빠른 속도로 발견되고 이미 뇌전증과 관련된 유전자 수가 1,000개 이상 보고된 상황에서 패널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21 그러나 제한된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였을 때 유병률이 높은 유전자를 선별하여 포함한 유전자 패널 검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임상에서 실제로 높은 진단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과 더 긴 시간이 소요되는 WES나 WGS와 같은 검사 이전 단계의 검사로서 그 가치가 있다.22,23
뇌전증 유전자 패널 검사 대상
그렇다면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자 패널 검사를 해야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선 어떤 뇌전증 환자에서 유전적 원인을 생각해봐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하고, 그 다음에 어떤 유전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유전적 원인은 오래 전부터 뇌전증의 원인으로 생각되었으며 특히 가족성 뇌전증이나 특발성 뇌전증으로 불렸던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뇌전증에서 유전적인 영향이 잘 알려져 있다.24 모든 뇌전증 환자가 유전적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유전 검사를 시행할 환자를 잘 선별할 필요가 있다.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외상, 감염 등 후천적으로 발생한 원인이 있는 뇌전증의 경우에는 유전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양한 선행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전적 원인에 의한 뇌전증을 시사하는 소견들이 확인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경우에 유전 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Table 1).25-30
뇌전증 유전자 패널 검사를 선택할 경우에는 유전자 패널에 포함된 유전자 이상에 의한 뇌전증의 특성을 이해하고 시행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뇌전증 유전자 패널의 유전자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ALDH7A1, ARHGEF9, ARX, ATP1A2, CDKL5, CHD2, GABRA1, GABRB3, GABRG2, HCN1, IQSEC2, KCNA2, KCNQ2, KCNQ3, KCNT1, MECP2, MEF2C, PCDH19, PNPO, PRRT2, SCN1A, SCN1B, SCN2A, SCN8A, SLC25A22, SLC2A1, SPTAN1, STXBP1, SYNGAP1.
뇌전증 유전자 패널 검사는 경련이 주 증상이며 임상 진단으로 한 가지 원인 유전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조기 발병하거나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진단을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부합하는 특성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유전적 원인에 의한 뇌전증을 시사하는 항목들 중 신생아-영유아기에 발생한 뇌전증, 발달지연, 인지기능 장애와 동반된 뇌전증, 항경련제에 불응하는 난치성 뇌전증,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심한 뇌전증, 1촌 이내 두 명 이상의 뇌전증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여러 유전 검사방법 중 뇌전증 패널 검사를 고려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26,27
뇌전증 유전자 패널 검사 결과 및 해석의 주의점
모든 유전자 변이가 질병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변이는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질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에서도 발견되는 변이들도 있다. 이러한 변이와 실제로 질병을 일으키는 변이를 구분해서 유전자 변이를 해석해야 하며, 환자에게서 특정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었을 경우 그 유전자 변이가 질병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따라 여러 단계로 분류하여 보고된다. 이러한 단계는 미국의학유전학회(American College of Medical Genetics and Genomics, ACMG)의 최신 가이드라인에 따라 5단계로 분류된다.33 각 단계는 병원성(pathogenicity)의 가능성에 따라 benign variant (양성변이), likely benign variant (준양성 변이), likely pathogenic variant (준병인성 변이), pathogenic variant (병인성 변이), variant of uncertain significance (VOUS, 의미를 알 수 없는 변이)로 나누게 된다. 각 단계의 판정은 변이의 특성 및 관련 연구 결과, 부모의 동일 유전자 보유 여부, 동물 실험 등 기능 연구 데이터, 임상 양상의 일치 여부 등 여러가지 근거들을 조합하여 시행하게 된다.
유전자 패널 검사를 하면 패널에 해당된 유전자의 변이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때 발견되는 모든 변이가 원인이 아니라 병인성(pathogenic)이나 준병인성(likely pathogenic) 변이로 나타난 경우 질병의 원인 유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하며 반면 양성(benign) 혹은 준양성(likely benign) 변이인 경우에는 질병과 관련 없는 변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 VOUS로 보고되는 경우에는 아직 임상적 의미를 판정하기에 근거가 불충분한 변이로, 병인성을 시사하는 추가적인 근거를 더 확인할 수 있다면 ACMG 가이드라인에 따라 준병인성이나 병인성 변이로 단계를 상향 조정할 수 있으며, 연구가 더 진행되고 데이터가 쌓이게 되면 병인성 여부가 훗날 재설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에게서 VOUS 변이가 확인되었는데 부모 검사를 통해 부모에게는 없는 변이임이 확인되면, 병적 변이를 시사하는 근거가 추가되어 질병 원인 유전자 변이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렇듯 유전자 검사 결과는 그 해석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므로 검사 결과는 유전학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적절히 이해하고 해석하여야 한다. 또한 그 검사 결과에 대해 충분한 시간의 상담을 통하여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올바른 유전자 변이의 해석은 추후 환자의 진단 및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데 기본이 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뇌전증 유전자 패널 검사의 보험 적용 및 소요시간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을 기반으로 한 유전자 패널 검사는 2017년 3월부터 승인된 의료기관에서 질환별로 1회에 한해 선별 급여(본인 부담률 50%)로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해졌다. 뇌전증의 경우 보험으로 보장된 유전자 패널에 넣을 수 있는 유전자의 개수는 2–30개로 제한이 되어있다. 뇌전증 유전자 패널 검사의 보험 수가는 2023년 8월 기준으로 859,330원이며 실제로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은 병원 종별에 따른 가산이 적용된(상급종합병원 30%, 종합병원 25%, 병원 20%, 의원 15%) 금액에 본인 부담률인 50%가 적용된 금액이다. 예를 들어 상급종합병원인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뇌전증 유전자 패널을 시행하였을 경우, 보험 수가의 종별 가산 30%가 추가된 후(859,330원의 1.3배인 1,117,129원) 50% 본인 부담률이 적용되어 558,565원을 환자가 부담하게 된다. 소요시간은 검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으며 검사 자체의 소요 시간은 1달 이내로 짧은 편이나, 분석 및 검증 관련 시간이 추가적으로 소요되므로 실제로 환자가 결과를 받는 데는 1달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결론
뇌전증 유전자 패널 검사는 뇌전증의 발병 원인 중 유전적 요인을 파악하고 환자에게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검사이다. 이를 통해 진단을 위한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확인된 원인 유전자에 따른 예후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일부의 경우 특정 유전자 변이에 따라 맞춤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뇌전증 환자의 치료 결과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 변이를 해석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의학 지식의 한계로 변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따라서 환자와 보호자는 검사를 시행하기 전 전문가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유전자 패널 검사의 장점과 한계 및 기대되는 결과에 대해 숙지하고 검사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유전 전문가는 검사 결과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한 상담과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뇌전증 유전자 패널 검사는 모든 유전자 이상을 확인하는 검사가 아니며 필요시 더 광범위한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는 검사나 부모 검사 등이 추가로 필요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