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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ia: Epilepsy Commu > Volume 2(1); 2020 > Article
뇌 연구의 역사 2: 로마제국으로부터 르네상스까지

Abstract

As a renowned physician of the Roman Empire, Galen produced many great works on the anatomy of the nervous system. He discovered cranial nerves, spinal cords, peripheral nerves, and the autonomic nervous system after observing similar anatomies in his vivisection of animals. He attempted to localize the human psyche. He also conducted several experiments to verify the function of the nervous system, the results of which have had a tremendous impact on modern medicine. Medical theories based on Galen’s work, including erroneous ones, outlived the man and lasted beyond the Renaissance period. New neuroanatomical or psychological progress was nearly halted and many previous works were lost for more than 1200 years of Dark Ages following the death of Galen. However some of Galen’s works were preserved at this time as well especially by Islamic societies. The return of these manuscripts to Western World revived the interest in the field of neuroanatomy. The most recognized product of this scenario was Leonardo da Vinci, whose famous works include many detailed figures describing the human body and the nervous system. The re-popularization of human dissections led to the first printed anatomical text by Berengario. Andreas Vesalius, the great anatomist from the Renaissance, published the landmark work, ‘De humani corporis fabrica’, which was based on extensive human dissections. In this book he corrected many of Galen’s errors. He furthered the field of neuroanatomy with an open mind on the basis of previous achievements made by previous pioneers.

고대 로마 시대

1. 갈렌(Galen, 130~200)

네 명의 로마 황제의 주치의기도 했던 갈렌은(Fig. 1)1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은 인지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실제적인 실험과 해부를 강조하였다. 갈렌은 현재의 터키에 위치하고 있는 페르가몬(Pergamon)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당시 이 지역은 교역의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하는 지역이었고 이에 따라 새롭고 진취적인 생각이 태어나기 좋은 조건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인근 알렉산드리아와 비교될 정도로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고 의학과 치유를 기원하는 사원이 존재하고 있었다.2
20세에 페르가몬을 떠났다가 28세에 다시 돌아온 갈렌은 검투사를 치료하는 책임 의사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는 사람의 해부를 금지하였으므로 이 검투사들의 상처는 갈렌에게 인간의 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주었다. 몇 년 후에 다시 로마로 가서 유명한 철학자의 말라리아를 성공적으로 치료하여 명성이 높아진 갈렌은 마침내 황제를 치료하는 의사로 임명되었다. 황제의 주치의가 되었다고 해서 로마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쟁을 지휘하기 위하여 황제가 수도를 떠나면 같이 떠나서 병영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기원후 169년에 로마에서 심한 역병이 돌자 다시 소환되어 역병 관리를 하게 되며, 계속해서 명성이 높아져서 마침내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를 가리켜 ‘최고의 의사’라고 표현한 바 있다.
갈렌을 한 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근접한 표현을 고르자면 ‘위대한 해부학자’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로마에서는 인간 해부를 엄격하게 규제하였기 때문에 갈렌은 양, 돼지, 고양이, 개, 원숭이, 바르바리 마카크(긴꼬리원숭이과에 속하는 영장류의 일종) 등 많은 동물을 해부하였다. 특히 갈렌은 영장류가 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가졌다.3
갈렌은 많은 저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며 도합 500개 이상의 저작을 썼다. 안타깝게도 이 중 많은 수가 191년의 로마 대화재로 갈렌의 도서실이 불타면서 유실되고 말았다. 저서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인간 신체의 유용성에 대하여(On the usefulness of the parts of the body)’와 ‘해부 방법에 대하여(On anatomical procedure)’다.4,5 전자에서는 인체 각 부분의 특별한 기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고, 후자의 한 챕터에서는 뇌의 구조에 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뇌에 대하여(On the brain)’에서는 신경계 해부에 관한 중요한 기술들이 들어있다.
비록 동물을 이용하긴 했으나 갈렌은 세밀한 해부 관찰로 여러 가지 뇌 해부에 관한 지식을 남겼다.6 우선 뇌 신경다발이 뇌로부터 나와 두개골의 아래쪽의 구멍을 통해서 여러 곳으로 분포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갈렌은 이 신경들을 7개까지 분류해 놓았는데 이 신경들은 지금 짝을 이루는 12개의 신경으로 알려진 뇌 신경(cranial nerves)이었다.7 또한 그는 이 신경 중 운동 신경과 감각 신경이 따로 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근육을 쓰는 성격상 운동 신경은 딱딱할 것이고 감각 신경은 부드러울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판단하였다. 이를 통해 운동 신경은 소뇌를 포함하는 뇌 뒷부분에 분포하고 감각 신경은 뇌의 앞부분(대뇌)에 위치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소뇌가 운동 기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감각 신경이 두정엽으로 올라가고 운동 신경은 전두엽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직관적 판단의 한계로 보인다. 또 용감한 사람은 근육이 더 강하므로 신경이 딱딱할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대뇌가 척수로 연결된다는 사실과 척수 신경을 비교적 정확하게 기술한 첫 번째 사람이 갈렌이다. 이 외에도 척수를 따라서 위아래로 길게 형성되는 우리 몸의 교감 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인 교감 신경줄기와 교감 신경절의 존재를 밝혀내었다. 교감 신경은 부교감 신경(parasympathetic nerve)과 짝을 이루어 우리 몸의 장기 등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곳인데, 갈렌은 이 줄기가 위아래로 길게 연결된 것에 착안하여 이 구조물을 통해서 우리 몸의 영혼이 자유롭게 이동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통해서 몸의 각 부분이 상호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다고 본 것은 놀라운 통찰력이다.
부수적으로 갈렌은 반회 후두 신경(recurrent laryngeal nerve)이 성대를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회 후두 신경은 진화학적으로도 매우 재미있는 신경인데, 미주신경과 같이 뇌를 출발하여 내려오다가 대동맥을 돌아 다시 위로 올라가서 성대에 이르게 된다. 하등동물은 반회 후두 신경이 성대로 바로 연결되는데 진화가 진행되면서 목이 길어지고 심장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포유류에서는 이러한 먼 길을 가게 된 것이다(심지어는 기린에서도 이와 같은 경로를 밟는다. 이러한 불필요한 주행경로는 진화의 한 증거라 여겨진다) (Fig. 2). 어느 날 갈렌은 돼지를 해부하던 중 반회 후두 신경을 자르게 되는데, 그때까지 고통으로 울부짖던 돼지가 갑자기 소리를 전혀 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8 이후 외과 의사가 목 수술을 하던 중 실수로 반회 후두 신경을 절단하면서 환자의 목소리가 사라진 사례를 통해 인간에게서도 이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갈렌은 척수에 대해서도 실험을 통해서 그 기능을 확인하였다. 척수의 다양한 부분을 절단하여 절단부 이하로 운동과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척수의 신경다발을 분리하여 그 일부분만을 묶는 방법으로 각각의 근육으로 가는 신경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갈렌은 에라시스트라투스가 심장에서 형성된다고 이야기한 인간 정신의 기원인 정신 프네우마(정신 뉴마, psychic pneuma)의 이론을 받아들이되, 정신 프네우마가 심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뇌 밑에 있는 혈관의 큰 네트워크인 뇌하부혈관망(rete mirabile)으로 이동한 후 혈관을 따라 뇌실로 가는데 이 혈관망과 뇌실에서 프네우마가 정교하게 다듬어진다고 생각하였다.9,10 그러나 이 혈관망은 동물에서만 발견되고 인간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동물 실험에만 의존해야 했던 갈렌의 한계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 이론은 그 뒤로 의심 없이 계속 받아들여져서 르네상스 시대에 가서야 바로 잡혔다.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이 뇌에 위치한다는 갈렌의 주장은 매우 위대한 것이었으며, 뇌 손상이 마음에 영향을 미침을 실제로도 관찰한 바 있다. 그 외에도 갈렌은 상상력, 인지, 그리고 기억력이 인간의 지능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아쉽게도 갈렌은 이러한 기본 두성 요소가 뇌의 각기 다른 부분에 위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기 직전에 멈추어 서고 말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갈렌은 인간의 지능이 구불구불한 뇌 피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나귀의 뇌가 겉으로 보기에 인간의 뇌보다 주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보다 지능이 낮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

최근 재평가의 움직임이 있기는 하나 흔히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 시대는 뇌 연구 측면에서도 더는 새로운 내용이 나온 것이 거의 없다. 한 마디로 지식의 정체기라고 할 만하며 심지어 그전까지 연구된 내용조차도 종교라는 이름 아래 다시 묻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시기에 서유럽을 공략하며 그 주위를 둘러싼 무슬림 세력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 되어 있었고 다행히도 갈렌의 많은 이론과 업적이 살아남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이들은 단순히 그 업적을 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이론을 추가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뇌의 각 뇌실에 각기 다른 기능이 있다는 이론이었다.11
또한 4~5세기의 중세에도 갈렌의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교회의 신부들이 있었다.12,13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시리아 지역에서 주교로 활동하던 네메시우스(Nemesius, 390~)로, 정신의 뇌실 기원설을 지지하면서 지각은 두 개의 외측 뇌실(lateral ventricle)에, 인지 기능은 중간 뇌실에, 그리고 기억은 후방 뇌실에 위치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이론은 성 아우구스틴(Saint Augustine, 354~430)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진 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전방 뇌실은 지각이 도달하는 곳이고, 후방 뇌실은 운동에 관여하며, 중간 뇌실은 기억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실지로 감각 신경이 모이는 곳이 두정엽이고 작은 골은 운동과 관련이 있으며 그 중간에 위치하는 해마와 시상이 기억에 관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뇌 연구의 역사에는 두 개의 셀 독트린(cell doctrine)이 있는데 첫 번째 셀 독트린은 뇌실에 여러 가지 뇌 기능이 나뉘어 존재한다는 최초의 뇌 기능 국소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이 경우 셀을 방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두 번째 셀 독트린은 신경세포 하나 하나가 독자적인 존재고 시냅스를 통하여 다른 신경세포와 교류한다는 이론이다.14-16
중세 시대 유럽은 종교의 영향으로 로마 시대의 의학 연구 업적이 묻힌 채로 있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무슬림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던 스페인을 다시 찾아오면서 과거의 유산과 다시 맞닥뜨리게 되었다.11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학자는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의학자인 아비세나(Avicenna, 980~1037)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다시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철학자이며 의학, 특히 뇌 연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17 아비세나는 5개의 다른 뇌 기능이 뇌실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고 소뇌 충부(cerebellar vermis)가 의식 흐름의 반응을 결정하는 밸브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중세 시대를 휩쓸었던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지면서 점차 교회가 주도하는 의료의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계속 금기사항으로 남아 있던 인간 해부에 대해서도 점차 그 금기가 약해지게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오랜 세월에 걸친 십자군 전쟁으로 많은 귀족과 전사들이 타향에서 죽어갔는데 사람들이 이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심장이나 유골 등을 고향으로 갖고 돌아가게 되면서 신체를 다루는 데 거부감이 점차 줄게 되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범죄 수사를 하면서 사망 원인의 규명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점차 부검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마침내 무려 1,500년의 간극을 깨고 몬디노 드 루지(Mondino de Luzzi, 1275~1326)에 의해 다시 인간 해부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외과 교수였던 몬디노는 바티칸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한 범죄자의 신체를 이용하여 공개 해부를 시행하였다.18 이러한 모든 노력과 요소들이 결합하면서 점차 르네상스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1. 레오나르도 다빈치(1472~1519)

많은 분야에서 천재임을 보여준 다빈치는(Fig. 3) 해부학과 뇌 연구 분야에도 업적을 남겼다. 무려 300개가 넘는 시신을 해부하였으며 700개가 넘는 해부 그림을 남겼다. 또한 뇌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유명하다.19,20 다빈치가 뇌실을 형상화하는 방법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우선 양의 뇌를 꺼낸 후에 뇌 위쪽에는 튜브를 박고 아래쪽 관을 통해서 왁스를 밀어 넣었다. 이 과정에서 뇌척수액은 위쪽 튜브로 밀려서 빠져나가고 왁스가 뇌실을 채우게 된다.21 이후 뇌를 분리해 내면 뇌실 모양의 왁스만 남게 된다(Fig. 4). 그러나 다빈치는 인간의 지능과 영혼이 뇌실에 있다는 생각에서 더 이상 진전하지 못했고 다만 감각 신경이 모이는 자리가 뇌의 앞부분 뇌실이 아니라 뇌의 중앙부 뇌실(뇌 감각 신경이 근처인 두정엽에 위치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관찰이다)에 있다는 의견만을 추가하였다.22

2. 최초의 해부학 책

최초의 해부학 책이라 할 만한 것은 1,521년에 이탈리아 사람인 자코포 베렌가리오(Jacopo Berengario da Carpi)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베렌가리오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 치명적인 싸움에 휘말리기도 하고 도둑질로 기소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매독에 수은을 이용한 치료법을 적용하여 유명해졌고 해부학적 기술이 매우 뛰어나서 볼로냐의 외과 강사로 임명되었다. 1521년에 ‘Commentary on Mondino’라는 제목의 해부학 교과서를 만들었다. 전적으로 본인의 해부학적 관찰을 바탕으로 책을 썼는데, 무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21개의 목판을 이용한 그림을 싣고 있다. 그는 맥락얼기(choroid plexus)가 혈관 덩어리이며 뇌하수체가 영혼의 흐름을 관장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갈렌의 의해서 정설로 굳어져 있던 뇌의 하부 혈관망(rete mirabile)의 존재를 부정하였다.23

3. 인간 해부학의 대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

브뤼셀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베살리우스는(Fig. 5) 어려서부터 해부학에 관심이 많아서 집 근처에서 발견되는 동물들을 잡아다가 직접 해부를 시도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처음에는 미술을 공부했고 파리와 이탈리아의 파두아에서 의학을 연마하였다.24,25 파리 거주 당시에는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인간의 뼈를 수집하기도 했다. 의사가 된 후 베살리우스는 파두아 대학에서 강사로서 첫 직장을 갖게 되었는데, 당시 파두아가 가장 유명한 의과대학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까지도 의학과 해부학은 모두 갈렌의 기술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상황이었다. 베살리우스는 그리스판인 갈렌의 책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갈렌의 생각과 관찰에 많은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특히 갈렌이 실제로 사람을 해부한 적이 없다는 데 주목하게 되었다. 마침내 1543년에 해부학 지식을 집대성하여 ‘인간 신체 구조에 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라는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26 이 책은 해부학 지식과 미술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해부 그림을 많이 갖고 있다(Fig. 6). 아마도 첫 스케치는 베살리우스가 직접 하고, 이후 이를 정교한 그림으로 바꾸고 목판에 새기는 작업은 당시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베살리우스는 갈렌의 해부학적 오류를 200개 이상 지적하였다. 그렇다고 베살리우스가 갈렌의 업적을 평가절하한 것은 아니고 갈렌의 오류를 보완하고 크게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실제로 베살리우스는 갈렌을 가리켜 ‘prince of doctors’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책 4장은 신경계를 다루고 있고 7장은 인간의 뇌를 기술하면서 15개의 그림을 싣고 있다. 이 그림들은 7개의 뇌 신경 쌍과 소뇌, 연수, 시신경의 교차, 뇌를 싸고 있는 경막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놀라운 그림은 뇌가 두개강 내에 있는 상태에서 가로로 뇌 단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는 일련의 그림들이다. 또 처음으로 뇌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시상과 선조체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베살리우스는 사람의 정신 또는 인지가 위치하는 곳에 대해서는 새로운 의견을 내지 못하고 뇌실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는 뇌가 어떻게 기능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베살리우스의 업적은 매우 높게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며 과거의 잘못된 믿음과 작별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대에서는 갈렌의 업적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베살리우스의 스승 중 한 사람인 실비우스는 왕에게 베살리우스를 처벌하도록 청원을 넣기까지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베살리우스는 한동안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책은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잘 팔렸다고 한다.

NOTES

Conflicts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uthor contributions

All work was done by Lee SK.

Acknowledgements

None.

Fig. 1.
Statue of Galen of Pergamon, Bergama, Tur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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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The recurrent laryngeal nerves detour unnecessarily (by about 4.6 meters) in giraffes, which is considered to be evidence of evolution, as opposed to intelligent design. The nerve's route would have been direct in the fish-like ancestors of modern tetrapods, traveling from the brain, past the heart, to the g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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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Self-portrait of Leonardo da Vinci (Turin Royal Library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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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The method used by Leonardo da Vinci to determine the shape of the cerebral ventricles. After drilling a hole in the base of the brain of a dead ox, he injected hot wax into the third ventricle with a syringe. When the wax was set, Leonardo removed the brain parenchyma, leaving behind the form of the ventr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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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Andreas Vesalius (the collection of the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a division of 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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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Dissection of the brain. Woodcut from the seventh book of Andreas Vesalius' De humani corporis fabrica, published in 1543 at Basel,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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