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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ia: Epilepsy Commu > Volume 4(1); 2022 > Article
뇌 연구의 역사 5: 뇌세포와 그 연결의 발견

Abstract

Thanks to the invention of the microscope equipped with an achromatic lens, research on the histology of the nervous system flourished during the 19th century. Jan Evangelista Purkinje, together with Gabriel Valentin, first depicted individual nerve cells. Robert Remak, one of the most remarkable microscopists of the 19th century, made the pivotal discovery that the cell body (globule) and fibers arising from the globule formed a single unit. In addition to improvements in microscopes, a new method of visualizing nervous tissue was developed—namely, the silver staining method introduced by Camillo Golgi. Golgi could identify the types and delicate branches of axons. However, he believed that axons always directly merged with other axons, which was the basis of the reticular or nerve net theory. Santiago Ramón y Cajal, the founder of modern neuroscience, finally established the cornerstone of the neuron doctrine, according to which the nerve cell is the basic unit of the nervous system and information flows from unit to unit without direct fusion. This structure is called the synapse.

조직학의 탄생

1590년에 최초로 개발된 현미경은 668년에는 네덜란드 사람인 레이우엔훅(Anton van Leeuwenhoek, 1632~1723)에 의해서 200배까지 확대가 가능한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그런데 초창기의 현미경은 물체를 관찰할 때 그 주변으로 색깔이 있는 링이 형성되는 단점이 있었다. 이 문제는 1826년이 되어서야 해결되는데, 와인 수입상이자 아마추어 과학자인 리스터(Joseph Jackson Lister, 1786~1869)가 최초로 무색(achromatic) 렌즈를 이용한 현미경을 만든 것이다(무색 렌즈 자체는 1730년에 이미 개발되었다).1 이러한 현미경의 발달과 더불어 알코올과 기타 물질을 이용한 고정법으로 조직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발달한 현미경을 생체조직 연구에 이용한 사람 중의 하나가 퍼킨지(Jan Evangelista Purkinje, 1787~1869)다(Fig. 1).2 그는 폴란드의 대학교수로 임용된 후에 당시로는 막대한 금액이 소요되는 무색 현미경의 구입을 수년에 걸쳐 대학에 요청하여 7년 만에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이전까지 확대경을 손에 들고 연구하던 퍼킨지에게 현미경의 구입은 새로운 연구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퍼킨지는 1833년에는 땀샘의 구조를, 1834년에는 배아세포의 섬모 운동을 관찰하였고 이러한 업적으로 1836년에는 대학으로부터 더 최신형의 현미경과 연구 건물을 배정받게 된다. 바로 세계 최초의 현미경을 이용하는 연구센터가 설립된 것이다.
연구 과정 중에 퍼킨지는 척수 신경절에 위치한 신경 다발을 바늘로 일일이 분리하여 관찰하였다. 동시에 퍼킨지는 대뇌의 구조에도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당시 Breslau 대학의 학생으로 퍼킨지의 총애를 받던 발렌틴(Gabriel Valentin, 1810~1883)은 대뇌 피질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개개의 대뇌 세포를 묘사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Fig. 2).3 이 묘사에서 발렌틴은 대뇌 세포가 플라스크 모양의 작은 구체(소구체, globule) 형태이고 그 안에는 많은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검은 소체가 있는데 이것을 핵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세포의 한쪽 끝에는 꼬리 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이것을 섬유(fiber)라고 불렀다.

뇌세포의 구조: 퍼킨지와 레막(Robert Remak, 1815~1865)

1837년에 퍼킨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뇌 각 부위, 즉 흑질(subtantia nigra), 아래올리브핵(inferior olive), 시상(thalamus), 해마(hippocampus)와 같은 뇌 각 부위의 신경세포의 모양을 관찰하고 기술하였다. 이 발견은 뇌 각 부위의 신경세포의 모양과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밝힌, 신경학 역사에서 기념할만한 사건이었다. 퍼킨지는 특히 소뇌의 바깥쪽에서 관찰되는 신경세포의 모양에 주목하였는데, 소구체를 갖는 플라스크 모양의 세포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고 이 세포들에서 나오는 작은 돌기는 소뇌 바깥쪽으로 향하고 긴 돌기는 소뇌 피질 하 부분으로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였다(Fig. 3). 첫 번째의 돌기는 수상돌기(dendrite)이고 긴 돌기는 축삭(axon)에 해당한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퍼킨지는 하나의 가설을 만들었는데 소구체는 발전소 역할을 하고 돌기는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줄에 해당된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갈바노미터가 막 나오려고 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아이디어는 대단히 통찰력 있는 생각이었다. 퍼킨지는 또한 축삭에 해당되는 돌기는 긴 고리를 형성하여 근육과 같은 말초기관까지 연결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돌기는 1896년에 콜리커(Albert von Kolliker, 1817~1905)에 의해서 정식으로 축삭(axo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4 이러한 연속되는 놀라운 발견에도 불구하고 퍼킨지는 개인의 명성에는 관심이 없었고 연구 결과를 출판하는 데에도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퍼킨지의 많은 연구 결과들은 제자들의 박사 논문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업적으로 최소 18개의 신경계 구조물에 대해 퍼킨지의 이름이 명명되었다.
훅(Robert Hooke, 1635~1703)이 식물세포를 처음 확인한 후에 1673년에는 레이우엔훅이 동물의 혈액에서도 작은 구체를 발견하여 동물에서도 조직의 구성원이 세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분야의 발달은 매우 더뎌서, 식물에서조차 핵의 발견은 1833년에야 이루어졌다(Robert Brown, 1773~1858). 프로이센에서 태어난 레막(Robert Remak)은 19세기의 뛰어난 생리학자로 현미경을 사용하여 신경세포의 발달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5 토끼에서 배아의 발달에 따른 신경 성장을 단계별로 관찰하였고, 수초가 말초신경을 싸고 있는 유수 신경섬유(myelinated nerve fiber)와 수초가 없는 무수 신경섬유(unmyelinated nerve fiber)의 존재도 최초로 밝혀내었다. 레막은 1838년에도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을 하는데, 척수에서 배아가 성장함에 따라 세포체에 해당하는 소구체로부터 신경 가닥이 자라나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관찰로 소구체 하나와 섬유 하나가 일 대 일로 발생하며 한 단위로 기능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였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배아 발생과정 중에 모든 세포는 이분열(binary fission; 세포 하나가 두 개로 분열)로 증식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힌 것도 레막이었다(이 이론은 15년이나 지나서 다른 연구자의 발표로 인정받게 되면서 발견자인 레막의 이름은 끝내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레막과 더불어 콜리커도 척수의 세포체로부터 신경섬유가 기원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특히 콜리커는 이러한 발견을 그림으로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다양한 위치의 신경세포에 대한 이 자세한 묘사 덕분에, 독립적인 신경세포와 신경섬유의 존재를 증명한 것은 레막이 아니라 콜리커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신경세포 염색법과 골지(Camilio Golgi, 1843~1926)

콜리커가 신경세포의 모양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제시한 후 1860년대에는 어느 정도 우연의 도움을 받아 신경세포의 염색법이 최초로 개발되었다. 독일의 해부학자인 겔락(Joseph von Gerlach, 1820~1896)은 1854년부터 조직을 염색하여 구조를 세밀하게 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특히 곤충에서 추출한 카민(carmine)을 이용하는 실험을 계속하였다.6,7 한동안 큰 성과를 보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미 다른 성분으로 처리된 소뇌 조직에 우연히 카민이 흘러 들어갔고 하루가 지난 뒤 신경세포체와 섬유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때부터 염색법을 이용한 신경세포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디이터(Otto Friedrich Deiters, 1834~1863)는 이러한 염색기법을 이용하여 소의 척수에서 전각세포(anterior horn cell)로부터 뻗어 나오는 신경섬유를 관찰할 수 있었다.8 특히 그는 작은 바늘을 이용하여 현미경 하에서 각각의 신경원과 섬유를 분리해 내어 개별적인 신경세포의 단위인 신경세포체(소구체와 섬유)를 확인하였다. 이는 최초로 독립적인 신경세포 단위가 분리된 사례로 여겨진다. 디이터는 이 작업을 통하여 신경세포체로부터 하나의 긴 원통형 섬유가 뻗어 나오는데(축삭에 해당함), 이 섬유는 전장에 걸쳐서 수초에 싸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세포체로부터 짧고 가느다란 섬유(수상돌기, dendrite에 해당함)들이 여럿 나오는 것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독립적인 신경세포를 관찰하였지만 디이터는 근본적으로 신경세포 간의 연결은 결국 문합(anastomosis)을 통해서 직접 연결되면서 그물 모양을 이루는 것(reticular system)으로 판단하였다. 겔락 또한 여러 염색 방법을 통해서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즉 신경세포는 세밀하면서도 매우 복잡한 그물 모양 체계를 이룬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카민 염색법으로는 신경세포를 전장에 걸쳐서 보는 것이 불가능하였고, 여러 개의 소구체와 핵, 과립체 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으로 관찰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때 이탈리아 해부학자인 골지(Camillo Golgi)가 수은을 이용하여 신경세포의 전장을 관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Fig. 4).9 밀라노 근처의 병원에 취직한 골지는 1873년 병원에 딸린 작은 아파트에 실험실을 차리고 연구를 해나갔다. 당시 그는 질산은(silver nitrate) 액으로 뇌 연질막(pia mater)을 염색하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실수로 다이크로뮴산 칼륨(potassium dichromate)으로 고정된 뇌 조직에 이 용액이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이 사고로 인해서 조직은 시커멓게 변하게 되었는데 골지가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니 놀랍게도 신경단위만이 염색되어 있었다. 즉, 은황색 배경에서 신경 조직들만이 검게 염색되어 두드러져 보였던 것이다(Fig. 5).10
이에 용기를 얻은 골지는 소뇌, 후각망울(olfactory bulb), 해마 등의 조직에 이 새로운 염색법을 적용해 나갔다. 이를 통해서 골지는 두 가지 형태의 축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1형의 축삭은 수초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적은 수의 가지를 치는 것이고 제2형의 축삭은 수초가 없이 길게 뻗어 나가면서 많은 가지를 치는 모양이었다. 또한 세포체에서 나오는, 현재의 수상돌기에 해당하는 가지도 생각과 달리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4차까지도 가지를 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얻은 조직 슬라이드 수천 장을 관찰한 후에 골지는 신경의 축삭이 서로 직접 그물망처럼 연결된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제1형 축삭과 제2형 축삭이 문합을 이루며 축삭과 세포체에서 직접 나오는 수상돌기는 축삭 등 다른 부분과 연결되지 않고 자유로운 말단으로 끝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골지가 평생 강력하게 주장한 신경망 이론(nerve net theory)이다(Fig. 6).11

독립적인 신경세포와 카잘(Santiago Ramón y Cajal, 1852~1834)

골지 염색법으로 골지가 명성을 쌓아가는 동안 그의 신경망 이론은 점차 반대에 직면하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이 이론에 의구심을 품은 사람은 라이프치히 대학의 교수인 히스(Wilhelm His, 1831~1904)다.12 그는 배아 발달 단계 과정에서 척수의 신경세포의 축삭이 원시세포인 뉴로필(neuropil)로부터 발생하며 뒤이어 세포체와 수상돌기가 형성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리스어로 나무라는 뜻에서 유래한 수상돌기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도 히스다. 하지만 그는 어떤 단계에서도 축삭이 서로 연결되는 것은 관찰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히스는 골지의 신경망 이론을 부정하게 되었다. 취리히 대학교수 포렐(August Forel, 1848~1931)도 신경망 이론에 반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13 포렐은 뇌간에서 나오는 뇌신경을 자르고 신경세포의 역행성 변성(retrograde degeneration)으로 생기는 뇌간의 병변을 확인하였다. 그는 뇌간에 단지 매우 국한된 뇌세포의 소실만을 관찰할 수 있었고 이러한 소견은 모든 뇌세포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신경망 이론에는 맞지 않는 결과였다.
이러한 논란 속에 현대 신경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카잘(Santiago Ramón y Cajal)이다.14 어렸을 때 악동으로 학교에서 여러 차례 퇴학을 당하기도 했던 카잘은 구두 장인과 이발사의 도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도 그는 화가가 되는 꿈을 키워 나갔는데, 이 때 마침 그의 아버지가 동네 묘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인간 골격으로 인체의 구조를 배우는 기회를 얻었다. 이런 우연한 사건으로 카잘은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의학 예비 학교를 졸업한 후에 쿠바에서 군의관으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말라리아와 폐결핵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서도 집에서 계속 연구를 진행하여 신경세포가 근육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로 발렌시아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 마침 콜레라가 창궐하여 수천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데, 카잘은 잠시 동안 연구 방향을 돌려 콜레라 치료와 백신 개발에 힘을 쏟았다. 이 공로에 대한 보답으로 시에서는 그에게 가장 발달된 자이스(Zeiss) 현미경을 선물하였다. 이것이 카잘의 연구를 꽃 피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년 뒤 35세가 된 카잘은 바르셀로나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이때 처음으로 골지 염색법을 접하게 된다. 이후 그는 골지 염색법을 개선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당시 골지 염색법은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나 여전히 미세한 축삭의 경로를 보는 데는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고, 수초가 있는 신경세포의 구조는 잘 볼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카잘은 우선 염색을 두 번 연속해서 하는 방법으로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였고, 수초가 형성되기 전의 미성숙 신경세포를 염색하는 방법으로 두 번째 문제를 극복하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돈으로 논문을 60개 인쇄하여 유럽의 저명한 신경 해부학자들에게 보냈다. 이 논문은 1888년에 처음 발간되었는데 매우 참신한 방법으로 결과물을 제시하였고 이 형식은 곧바로 이러한 논문의 기본 형태가 되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여러 개의 세밀한 그림도 제시하였는데 그 중 소뇌 세포들을 그린 그림은 특히 정밀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카잘도 연구를 시작할 때는 그 당시 대세로 인정받던 신경망 이론을 믿었다. 하지만 이 논문을 발표할 당시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축삭의 직접적인 연결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카잘은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독립된 단위로 존재하면서 신경세포들이 직접 연결되지 않고 인접하는 형태로 소통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골지의 신경망 이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론이다. 또 하나 카잘은 수상돌기에 아주 작은 가시 같은 구조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수상돌기 가시(dendritic spine)이다. 이 구조물은 골지도 관찰한 바 있지만 염색 과정 중에 인공적으로 생긴 것으로 판단하여 무시하였다.
카잘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신경세포의 축삭이 항상 다른 세포의 수상돌기에 인접하여 끝난다는 것이다(Fig. 7). 그는 소뇌의 과립세포(granular cell)의 축삭이 항상 퍼킨지 세포의 수상돌기 부근에서 끝나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후 뇌 다른 영역에서도 축삭이 수상돌기가 밀집한 부위에 도달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러한 관찰은 수상돌기가 축삭 말단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으며, 신경계의 정보 흐름이 수상돌기, 세포체, 축삭, 그리고 다시 다른 세포의 수상돌기로 전달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중요한 발견이다.15 이에 반해 골지는 축삭들이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정보의 흐름은 항상 축삭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수상돌기나 세포체는 이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고수하였다.
카잘은 1889년 이러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독일의 학회에 참석하였다. 카잘은 독일어를 하지 못했지만, 학회장에 현미경을 설치해 놓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직접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참석자 중에 당시 가장 저명한 신경 해부학자인 콜리커가 있었다는 것이 카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그는 카잘의 연구 결과에 크게 감명받아 이전까지 믿고 있었던 골지의 신경망 이론을 버리고 독립된 신경세포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또 카잘을 다른 저명한 신경 해부학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이 결과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점차 많은 과학자가 카잘의 의견을 지지하게 되었는데 독일의 해부학자 봐루데야(Heinrich Wilhelm Gottfried von Waldeyer, 1836~1905)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독립된 신경세포설을 지지하는 6개의 중요한 논문을 썼고 신경세포도 우리 몸의 다른 세포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가 모여서 뇌라는 기관을 만든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그는 처음으로 신경원(neuron)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 단어에는 독립된 신경세포설의 근본적인 개념이 들어가 있어, 이 뒤로는 신경세포는 신경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로써 신경원, 축삭, 수상돌기와 같은 신경세포의 구조물이 모두 적절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16
카잘의 이론은 초기에는 신경망 이론의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1890년 이후로는 점차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후일에 카잘은 수상돌기부터 축삭에 이르는 길에 작은 전선과 같은 신경섬유(neurofibril)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정보의 흐름에 대한 자신의 이론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카잘은 ‘신경원(신경세포) 독트린(neuron doctrine)’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하였다.17 신경원 독트린은 신경원이 뇌와 척수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는 이론이다. 여기에서 신경망이론이 완전히 부정되려면 두 세포가 직접 연결되지는 않고 접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하지만 당시 현미경의 수준은 그 정도로 정밀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간극이 있는 접촉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독일의 해부 생리학자인 쿤(Wilhelm Friedrich Kühne, 1837~1900)은 신경과 근육이 만나는 지점에 간극이 존재함을 관찰하였고 신경 말단이 열리면서 모종의 액체가 이 간극 사이로 흘러 들어가 결국 근육에 도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마지막 의문은 과연 신경세포 사이에도 이러한 간극이 존재하느냐는 것이었다.
카잘은 이 문제를 배아 세포 관찰을 통해서 해결하게 된다. 현미경을 이용한 세밀한 관찰을 통하여 카잘은 신경세포가 성장하는 동안에 말단 부분이 항상 부풀어 오르면서 아메바처럼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였다. 특히 발생 과정에서 자라나는 신경세포 말단의 움직임은 아무 방향으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도달하고자 하는 세포 방향으로 목적성을 갖고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중요한 사실도 확인하였다. 발달 과정의 병아리 배아의 소뇌에서 오름 섬유(climbing fiber)의 축삭 말단은 항상 퍼킨지 세포의 수상돌기를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카잘은 퍼킨지 세포가 어떠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오름 세포가 적절한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오름 세포와 퍼킨지 세포는 직접 접합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발견이 이루어지는 동안인 1894년에 카잘은 영국왕립학회로부터 강연을 요청받게 된다. 이 강연은 척수 반사경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셰링톤(Charles Scott Sherrington, 1857~1952)이 마련한 것이었다.18 셰링톤은 척수 경로의 세포 연결 과정을 연구하는 중에 신경 세포들이 접촉은 하지만 융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강연은 큰 반향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카잘과 셰링톤이 평생 좋은 친구가 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 결과로 셰링톤은 이 내용을 생리학 교과서(Textbook of Physiology)에 넣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신경세포 간의 간극이 있는 접촉을 무엇이라고 부를지 고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를 ‘syndesm’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악수하다(clasp)라는 뜻이다. 이후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학자의 도움을 얻어 이를 시냅스(synapse)라고 최종적으로 명명하였다. 바로 신경세포 간의 접촉이 정식 이름을 갖는 순간이었다(Fig. 8).

1906년 노벨상 수상: 골지와 카잘

위에 언급한 신경학에 대한 지대한 공로로 1906년 골지와 카잘은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게 된다. 이때가 최초의 노벨상 공동 수여로 기록되어 있다.19 수상 기념 강연은 이틀에 걸쳐서 이루어졌는데 첫날 강연은 골지가 하게 되었다. 사실 골지는 이때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연구를 하지 않은지 10년이 넘은 상태였다. 그런데 골지는 엉뚱하게도 강연의 대부분을 신경 독트린을 깎아내리는 데 사용하였고 여전히 자신의 신경망 이론을 고집하여 청중들을 놀라게 하였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카잘은 부들부들 떨면서 이 내용을 들었다고 한다. 둘째 날은 카잘의 차례였는데 그는 실제의 연구 결과와 증거들을 보여주면서 신경 독트린을 차분하게 설명하였다. 사실 평소에도 카잘은 다른 과학자의 발견을 자주 언급하였고 골지를 포함한 여러 명의 이름을 자신의 연구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로 언급한 바 있다. 역사는 카잘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NOTES

Conflicts of interest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Funding

None.

Author contributions

All work was done by Lee SK.

Fig. 1.
Jan Evangelista Purkinje. A photograph from Wellcome Collectio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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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2.
The first description of a nerve cell (globule) by Gabriel Valentin in 1836. a, cell body; b, appendage (the beginning of the axon); c, the central region of the cell; d, nucleus. From Plate Ⅶ from Valentin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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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3.
The cellular structure of the cerebellum as presented by Purkinje. From Plate Ⅱ from Purkinje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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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4.
Camillo Golgi. A portrait from Wellcome Collectio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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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5.
Golgi-stained fusiform cells 1. Wellcome Collection (London); contributed by Dr. Carole Hackney. License: Attribution-NonCommercial 4.0 International (CC BY-NC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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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6.
Reticular theory. Golgi believed that axons always fused with other ax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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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7.
Example of Cajal’s work. Cajal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the neuron doctrine, according to which the nerve cell is the basic unit forming the brain as an organ. The axons of nerve cells terminate adjacent to the dendrites of other nerve cells. Wellcome Collectio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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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8.
Synapse. A synapse permits a neuron (or nerve cell) to transmit an electrical signal by transforming it into a chemical signal to another neu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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